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기준이 규모, 수치 등의 양적 요소에서 행복, 만족 등의 질적 요소로 확장되면서 많은 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머물러 생활하고 싶은’ 정주지에 대한 선택 요소가 다원화되며 ‘결국은 수도권’으로 귀결되었던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예컨대 매년 40만여 명의 도시인이 농어촌 지역으로 향하는 것이 그렇다.
[제13회 아름다운 괴산 관광사진 전국 공모전 수상작 중 2편] ⓒ2021.괴산군청.All rights reserved.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한 소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고향마을’이다. 한적한 길의 양옆으로 괴강이 고요히 흐르는 인구 3만의 작은 마을. 전체 면적의 75%가 산림지형인 전형적인 농촌 지역에 몇 해 전부터 귀촌살이를 희망하는 이들의 관심이 꾸준하다. 실제로 이들에게 괴산은 ‘귀농·귀촌 1번지’로 일컬어지며 매력적인 정주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역의 정주성, 즉, 터전으로서의 매력도는 ‘삶의 질’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렇기에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원만한 인간관계와 정서적 안정, 양질의 문화 향유 등이 고려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령화, 저성장의 고충을 안고 있는 농촌, 괴산으로 향한 이들은 무엇을 소망했을까? 또,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귀촌살이를 잇고 있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촌 1번지 괴산으로 향했다.
지역문화, 책에서 답을 찾다 | 괴산책문화네트워크
이름 때문에 서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한책방>은 설립 10주년을 앞둔 작은 출판사이다. 책방지기 천정한 대표는 단순히 문자를 담아내는 그릇이 아닌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서 대중과 친숙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회에 있어야 할 책’을 만든다. 괴산에서의 귀촌살이를 택한 천정한 대표와 그의 배우자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박희영 공동대표는 수도권에 집중된 책문화를 지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지난 2020년, 지역문화콘텐츠기획사 <문화잇다>를 설립했다.
[괴산 청천면에 위치한 ‘책방 문화잇다’ 내부] ⓒ2024.문화잇다.All rights reserved.
만족, 행복, 즐거움 등은 좋은 삶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기에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일은 좋은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한 소도시에선 문화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때문에 자생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마련 일이 요구되지만, 인구 규모상 사람이 모이는 일부터 제한적인 지역에선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괴산책문화네트워크의 회원들과 공연을 관람하는 마을 주민들] ⓒ2024.문화잇다.All rights reserved.
<괴산책문화네트워크>는 <정한책방.문화잇다>의 천정한·박희영 공동대표를 비롯, <숲속작은책방>의 백창화·김병록 공동대표, <열매문고>의 엄유주 대표, <쿠쿠루쿠쿠>의 임희선 대표, 그리고 <목도사진관·자루북스>의 이영규 대표, <고반출판사> 허재식 대표 등 문화예술계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책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던 이들이 귀촌인으로서, 또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공유하며 괴산이라는 문화불모지에서 어떻게 문화예술 기회를 만들고 확장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들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기저엔 언제나 ‘책’이 있었다
[괴산 책문화축제와 프로그램을 즐기는 마을 주민들] ⓒ2024.문화잇다.All rights reserved.
사라져가는 삶에 대한 기록 | 괴산로컬잡지 툭(toook)
지역문화의 경쟁력을 가늠할 때 독특한 전통과 축제의 규모 등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문화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도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히 전통과 축제를 기준으로 터를 잡지 않는다. 지역의 정주성, 즉, 터전으로서의 매력도는 매일 마주하는 삶과 직결하므로, 삶의 현장을 담은 문화가 결국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강한 경쟁력을 갖는다
[괴산로컬잡지 ‘툭(toook)’] ⓒ2023.문화잇다.All rights reserved.
이름에서부터 지역 특유의 투박한 정서를 담은 <툭(toook)>은 그야말로 ‘툭-’하며 퉁명스레 괴산의 이야기를 던진다. 그러나 잡지 한 권을 위해 괴산 곳곳의 현장을 뛰며 기록하는 <괴산책문화네트워크>의 손과 발은 절실하고 치열하다.
[‘툭(toook)’ 2호 출간 기념회] ⓒ2023.문화잇다.All rights reserved.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쏟아 부었던 애정과 시간만큼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오직 민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로컬잡지에 대한 관심은 <툭(toook)>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판매량과 독자들의 격려와 응원, 다음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1호에 그칠 뻔했던 로컬잡지를 2호까지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소멸’이라는 매정한 단어에 맞서는 <괴산책문화네트워크>의 고군분투가 <툭(toook)>이라는 귀한 책으로 함축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 귀한 로컬잡지는 ‘함께 살되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이 서로에게, 혹은 ‘괴산’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들릴 타지의 사람들에게 ‘툭’ 하고 던져보는 시골의 이야기’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오래된 미래’에 기반하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로컬’에 대한 가능성을 나누고 싶다’는<괴산책문화네트워크>의 소망을 담은 로컬잡지 <툭(toook)>.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고자 하는 귀촌인들의 연대와 도전이 ‘머물러 향유하고 싶은 문화’로 괴산에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골에서 놀고 싶은 | 청년창작소 오롯
대도시의 삭막함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농촌은 매력적이다. 꽉 막힌 도로, 각박한 인간관계를 벗어나 그야말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다양한 지원책의 손짓은 그들을 농촌으로 움직이게 한다. 실제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연간 20만여 명의 청년이 농촌에 이주했다.
그러나 실제로 부딪히는 생활은 꿈꿔왔던 환상과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하늘과 바람과 별이 주는 낭만은 있지만, 그것들이 도시의 즐길 거리가 주는 재미를 대체하기엔 아쉬운 건 사실이다. 행복, 만족 등의 질적 요소가 채워지지 못하면 정주지로서의 매력은 반감된다. 때문에 청년들의 농촌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지역의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농촌 살이를 마음먹은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자처하는 <청년창작소 오롯>은 ‘괴산에서 사는 즐거움을 스스로 찾자’는 목표로 모인 청년 주도의 문화공동체이다. 홍남화 대표는 괴산 곳곳에 숨어있는 청년들을 ‘긁어모으며’ <청년창작소 오롯>의 설립을 이끌었다.
[청년창작소 오롯의 내부공간] ⓒ2024.청년창작소 오롯.All rights reserved.
연말이면 이듬해의 동향을 분석하는 서적이 쏟아져 나온다. 책의 제목은 다르지만, 세대를 나누어 각각의 생활양식에 대해 논하는 페이지는 빠짐이 없다. 저자가 속한 분야에 따라 관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MZ’로 통칭되는 2030 청년층을 분석하는 데 있어 반드시 등장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다. ‘소유보다 공유’, ‘상품보다 경험’, ‘적극 소통’, ‘재미 추구’가 그것이다
청년창작소 오롯의 모임 활동] ⓒ2024.청년창작소 오롯.All rights reserved.
[플리마켓 ‘마주보장’과 도깨비학교] ⓒ2024.청년창작소 오롯.All rights reserved.
‘청년창작소’라는 명칭이 자칫 기획자들의 모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청년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걸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악, 미술 등으로 대표되어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라는 영역에 청년들의 엉뚱함과 상상력을 해한 ‘이상한 일’을 벌이고 싶다는 것이다.
[청년창작소 오롯 회원들] ⓒ2024.청년창작소 오롯.All rights reserved.
한 해가 저문다. 세워둔 계획을 짚어보며 달성한 것과 놓친 것 사이에서 다음을 기약하는 때이다. 지나간 계절을 돌아보며 시끌벅적했던 시간들을 다시 보면 아쉬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2024년, 지역문화진흥원은 지역을 찾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곳곳의 문화를 경험해보며 지역의 변화를 몸소 체감했다. 지역의 고유 자원에 색을 더해 색다른 자원을 만들고, 전 세대가 서로 협력해 공존의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중소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보았다. 전통에 대한 존중과 변화에 대한 유연함을 통해 전지구화 시대에서 변방의 작은 지역이 살아남는 방식을 목도했다.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 ⓒ2024.클립아트코리아.All rights reserved.
지역의 잠재된 자원들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문화로 발산되어 골목골목에 스며들었다. 저마다의 역사가 가진 공간의 가치를 알렸으며, 공동의 이야기로 지역민과 함께 로컬리티를 발현하고자 하는 문화발신지의 뜨거움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부단히 살아온 어제와 살아갈 내일을 더 많은 곳에 알리고자 현장을 찾았다.
분명한 자기정체성과 생명력 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지역을 조망하고자 했던 마음이 흡족함과 아쉬움의 경계에 있다. 일상 가까이 맞닿아 있는 우리들의 ‘아주 보통의 하루’를 생생히 전하고 소소하지만 서로를 이어주는 지역의 이야기로 함께 할 다음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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