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의 기준이 문화로 옮겨지면서 다수의 지역에서 문화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도시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으로 문화가 지목되며 ‘문화도시’에선 이와 관련된 각종 시설과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쏟아지곤 한다. 하지만 곳곳엔 ‘문화예술을 즐기는 행위’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취미로 바라보며 접근조차 어려워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포항 스카이워크와 상생의 손] ⓒ2024.포항시청.All rights reserved.
명실상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수많은 문화 콘텐츠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어 ‘문화 향유’라는 행위가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는 시대이다. 현 세기에서 문화는 삶의 필수조건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된다.
‘명실상부’란 그 이름과 실상이 꼭 맞을 때 가능한 형용이다. 문화의 세기, 문화의 도시에서 우후죽순 쏟아지는 시설과 콘텐츠. 그 이용과 향유가 어떤 조건에서도 ‘제약 없이, 불평등하지 않도록’ 도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제 법정문화도시 5년 차를 지나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다.
앎과 함의 문화 발신지 | 포항문화재단
‘철의 도시, 문화도시’라는 비전 아래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며 특색 있는 지역문화 양성을 위해 달려온 5년. 법정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포항문화재단의 이상모 대표이사는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포항문화재단 전경] ⓒ2024.포항문화재단.All rights reserved.
[포항문화재단 이상모 대표이사] ⓒ2024.주식회사 파동.All rights reserved
이상모 대표이사는 ‘나 자신의 신체 알기’를 통해 발견한 지역의 개성과 정체성이 진정한 ‘로컬리티(Locality)’임을 역설하며 문화의 몰개성화를 경계한다.
[포항문화재단 ‘2024 포항융합예술주간: 제6의 섬’] ⓒ2024.주식회사 파동.All rights reserved.
공통의 경험과 공동의 이야기, 그리고 문화 민주주의
‘조건과 제약 없이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많은 도시에서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시책을 강구한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프로그램이 '문화의 민주화'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화의 민주화란, 영화나 연극처럼 미학적으로 인정을 받은 고급예술과 이를 생산하는 기관이 중심이 되어 문화소외 계층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도모하는 방향에 가깝다. 콘텐츠 생산자 즉, 전문 예술인, 기획자 양성에 힘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5년차 법정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재단이 추구하는 문화는 어떤 방향일까.
[포항 지진과 힌남노 피해 당시 시민들의 연대 모습] ⓒ2024.포항시청.All rights reserved.
문화의 민주화가 양질의 문화 활동에 대한 개인의 참여와 접근성 확대에 중점으로 둔다면, ‘문화민주주의’는 예술이 민주적 프로세스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에 초점이 있다. 다시 말해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 행위에 있어 문화 소비자, 즉 지역민의 민주적 참여가 필요하며, 그로 인해 지역의 소리, 지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콘텐츠 내면을 이룬다는 것이다.
공간에 새겨진 문화 민주주의, 동빈문화창고 1969(구. 수협냉동창고)
포항에서는 공급 중심의 막무가내식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도시 답게 지역민 스스로가 문화소비자이자 동시의 생산자로의 역할을 하며 문화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나눈다.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민공동체의 참여와 의사결정을 통한 지역 공간의 활성화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그렇게 조성된 공간 안에서 지역 예술인과 노동자는 ‘종이 한 장’ 차이의 역할을 나누며 문화 콘텐츠 생산을 위해 협업한다.
[동빈문화창고 1969 외관과 냉동창고 기계를 보존한 내부] ⓒ2024.(재)지역문화진흥원.All rights reserved
북구 동빈 내항에는 근대 포항 어업의 전진 기지 역할을 했던 냉동창고가 있었다. 50여년 간 그 역할을 다하고 폐쇄되었지만, 어업인들의 노동의 땀과 삶은 공간에 그대로 머물렀다. 동빈 내항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어업인의 애환이 담긴 냉동창고. 포항의 사람들은 폐쇄된 냉동창고의 장소성, 역사성에 주목했고, 포항문화재단에서는 시민, 지역 예술가이 함께 공간운영의 방향과 계획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담론의 장을 마련했다. 지역민들의 입을 통해 어업조합의 배경부터 포항수협 형성 과정, 구항의 지리적 환경 변화, 냉동창고가 남긴 근현대적 가치와 함께 해양 문화를 중심으로 변모해 가는 포항의 이야기가 전해졌고, 이러한 담론은 냉동창고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
<동빈문화창고 1969>는 그렇게 탄생했다. 허물고 세워지는 절차가 아닌 포항의 소리, 포항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그대로 내면에 담긴 문화 민주주의의 성격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2024 포항융합예술주간:제6의섬’] ⓒ2024.(재)지역문화진흥원.All rights reserved
<동빈문화창고 1969>는 ‘환동해 해양문화의 허브’로서 시민과 예술가, 노동자가 함께 실험적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팝업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화도시 안에서 각자의 활동을 공유하며 산업의 기술과 문화예술의 실험적 융복합을 실현해 봄으로써 지역민으로 하여금 문화도시 구성원으로의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현재 포항에서는 철의 도시이자 창의문화도시인 지역의 특성을 기술을 예술의 독특한 융합으로 승화한 ‘2024 융합예술주간’이 진행 중이다. <동빈문화창고 1969>에서 펼쳐지는 <제6의 섬 The Sixisles> 전시 역시 고대 상상의 대륙 ‘아틀란티스’, 포항 상상의 섬 ‘자미도’나 ‘삼봉도’와 같이 50만 시민이 마음 속에 그려온 저마다의 섬을 ‘예술과 기술’로 만들어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화도시에서의 복합문화공간은 이렇듯 각자의 관점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협업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문화 자원을 만들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 옛날, 어민의 삶과 생존의 공간이었던 냉동창고. 이제는 ‘철의 도시, 문화도시’의 로컬리티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지역민 중심의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활짝 열려 있기를 기대해본다.
[동빈문화창고 1969]
해양 문화와 포항항 구항의 가치를 담은 복합문화공간.
포항 문화 산업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인력양성과
해양문화 콘텐츠 창작 및 제작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선착로78
- 전화 054-289-7965
- 운영시간 화~일,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2024 문화로 사회연대 | 문화로 만드는 마니또
우리는 문화를 배우며 성장한다. 문화를 통해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공공성의 태도를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윤리와 도덕을 습득하며 하나의 구성원으로 사회화된다. 개인은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문화 감수성을 공유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문화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정서 함양과 인격 형성의 도구이자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수단으로써 그 기능을 한다.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지는 문화의 시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화 접근성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 접근성의 확대는 단순히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을 넘어 한 개인의 사회화를 증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나 신체 장애, 사회적 고립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누구나 평등한’ 문화예술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24 문화로 사회연대: 문화로 만드는 마니또] ⓒ2024.(재)지역문화진흥원.All rights reserved
<문화로 사회연대>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역자원과 인적자원 연결을 통해 문화적 연대를 도모한다. 문화프로그램, 인문상담, 사회관계망 등을 연계하여 참여자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감 고취를 지원하는 것이다.
포항은 <문화로 사회연대>의 지역거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문화 소외층의 문화 생활 척도를 측정하고, 그들의 문화적 권리 보장을 위해 시민단체와 논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솔루션 프로젝트를 시행해왔다. 법정문화도시로서 지역민 개개인의 안전한 문화 생활 영위에 대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설계해온 것이다.
_문화로 사회연대 포항 PM <하루의 축> 우지연 이사
<2024 문화로 사회연대: 문화로 만드는 마니또>의 현장.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은 시민 강사의 지도에 따라 서툰 솜씨로 화분에 꽃을 옮겨 심었다. 눈을 맞추며 담소를 나누는 천진한 얼굴, 누구의 꽃이 더 예쁜 지 서로 겨뤄보는 광경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2024 문화로 사회연대: 문화로 만드는 마니또] ⓒ2024.(재)지역문화진흥원.All rights reserved
우리는 ‘공급자’가 아닌 ‘친구’
협력과 조력은 다르다. 조력이 일방적 도움과 지원을 의미한다면 협력은 대등한 힘을 가진 두 집단이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같은 크기의 힘을 모으는 일이다. <문화로 사회연대>에서 복지와 문화는 조력이 아닌 협력의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우지연 이사가 경험한 두 분야의 시너지는 어떤 모양의 효과를 내고 있었을까.
[2024 문화로 사회연대 팜플렛 및 2023 사례집] ⓒ2024.(재)지역문화진흥원.All rights reserved
사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구성된다. 각자의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문화를 체험하며 공동체로서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포항 운하와 포스코] ⓒ2024.포항시청.All rights reserved.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지역민 스스로 자유롭게 문화를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문화도시가 갖춰야 할 자격이다. 그리고 지금, 아니 오래 전부터 포항에서는 시민 주도의 로컬리티 실현. 그리고 이를 통한 연대의 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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