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이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다.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도 마을에 60세 이하 주민을 찾아보기 어렵고 청년회 조직은 운영이 어려운 고령화의 현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좋은 일자리와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과 대도시로 모여든 이후 수도권의 일극(一極) 집중화로 인한 국토 불균형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가 차원의 인구감소로 인해 청년층의 인구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얼마 없는 청년들 또한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으로 지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2020년 우리나라는 인구 관련하여 세 가지의 기록을 갱신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의 자연감소(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둘째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역전하였다. 셋째,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층에 첫 진입하였다(차미숙 외, 2021). 이처럼 우리나라는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낮은 출산율 등 자연적으로 인구가 감소함과 동시에 남아 있는 인구마저 수도권으로 모이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탄생한 혁신도시 출범 이후 오히려 이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
전국 인구감소지역 현황 ⓒ행정안전부 내부자료
이러한 상황을 선제적으로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인구가 감소하면서 마을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마을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종착점으로 마을 자체가 소멸하는 부정적 시나리오가 나타나고 있다(오다키리 도쿠미, 2014). 우리나라 지방 인구감소 또한 단순히 고령화와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과 수요 및 세수의 감소와 함께 사회복지비 지출과 행정비용 급증 부담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남아 있는 주민마저 후진적 행정서비스와 부족한 사회인프라에 시달리며 지속적으로 삶의 질 하락을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악순환은 인구감소의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생활인구’ 도입과 고향사랑기부제도
물론 이러한 국가의 존망의 기로에 있는 인구감소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1년 전국적으로 89개 기초자치단체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하였고, 이러한 지역을 위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하였다. 2022년에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제정하여 202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특별법은 전국적으로 인구감소대응계획 수립과 함께 비정주 인구로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 또한 지방 시대를 외치며 균형발전을 위한 자생적인 지역의 창조적 전략을 주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행위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확충과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고향사랑기부제도’가 2023년 1월부터 실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인구감소의 어려움을 정부 활동과 함께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행위를 통해 인식과 참여를 확산하려는 정책 목적이 있다. 고향사랑기부 제도는 현재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기부금액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해 지역 간 재정 불균형 완화 효과를 설계하였다. 고향사랑기부제도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기부 지역으로부터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인데 기부금의 30%까지 해당하는 금액 상당의 지역 특산품, 문화관광 상품권 등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도는 직접적으로는 기부금을 통한 지방정부의 재정확보 효과를 거론할 수 있으나, 실제 재정 유입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오히려 답례품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홍보와 지역의 긍정적 인식 확대의 측면을 기대효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전지훈, 2022).
관계인구, 비정주 인구에 대한 정책적 관심
ⓒ고향사랑기부 종합 포털사이트(위기브)
ⓒ일본 총무성 관계인구 포털사이트
인구감소 대응을 위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 공통적으로 정주(定住) 인구보다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비정주(非定住) 인구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우선 특별법의 내용에서 제시된 생활인구는 통근, 통학, 관광 등을 목적으로 지역을 방문하여 체류하는 사람으로 지역 거주보다 생활에 인구정책의 포커스를 두고 있다. 이러한 생활인구의 본질적 목적은 지역 활성화와 지역 활력 제고이다. 지역 간 인적교류와 일상활동을 통해 지역 기능이 축소되지 않고, 정주 인구는 감소해도 지역 활력은 유지되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일본에서 ‘관계인구’의 개념을 통해 지역상생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계인구는 방문자와 정주인구 사이에 있는 매우 폭넓은 개념으로 지역사회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 비정주 인구 형태를 의미한다. 현재 거시적 인구감소 상황에서 정주인구 증가는 지역 간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업무, 휴가, 연고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를 맺는 타 지역 사람들을 새로운 인구 개념으로 유입하자는 것이다. 관계인구의 핵심은 역시 지역과의 관계성이다. 단순한 관광체험에서 한달살기 등의 일반적 교류활동, 직장을 포함하여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한 관계 맺음까지 관계의 정도에 따라 단계를 구분한다. 이를 통해 정주인구 증가와 관계인구로 인한 지역 활력을 도모한다. 일본에서는 관계인구로 유입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역할로 고향사랑기부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기부행위는 자신의 자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기부하기 전에 지역에 대한 관심, 애정과 같은 기부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안소현 외, 2022).
결국 개인이 특정 지역에 기부를 한다는 것은 지역과 긍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을 방문하거나 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마음이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사랑기부제도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인구소멸에 처해 있는 지역들이 관계인구를 형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을 가질 필요가 있다.
관계인구 유치는 지역사회와 관계형성의 기회를 어떻게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마련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지역사회의 행사나 축제에 참여하면서 자원봉사 및 재능기부와 같은 활동들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거나 거주 관광, 텃밭 가꾸기 등의 휴양활동을 통해 제2의 거점과 같은 역할로 관계를 맺기도 하며, 워케이션 등 일정 기간 근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또한 중장기 체류활동을 통한 한달살기 및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농산어촌 체험형, 지역마다 많이 구축되는 예술인 대상 거주를 지원하는 레지던시 사업 등도 모두 관계인구를 만드는 방법들이다.
로컬 창조활동과 워케이션 부상
제도적으로 고향사랑기부제나 인구감소지역지원제도와 함께 지역 활성화와 관계인구 유입의 전략으로 로컬을 매력적으로 브랜딩하고 변화시키는 정책 시도가 도입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골목상권 기반의 로컬창조활동과 워케이션의 부상인데, 특히 청년 세대들을 관계인구로 유입하는 동시에 지역 매력화를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로컬의 특색 있는 자원을 창의적으로 재생산하여 매력적인 공간으로 창출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방문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과거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앞 골목이 그랬다면, 현재 양양의 서피비치, 연희동 골목, 목포 구도심, 군산시 영화타운 등 창의적인 새로운 공간은 매력적인 경험과 활동을 선사하며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모종린, 2021). 이러한 지역 특색의 매력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나 상업화된 대도시 공간의 경험과 다르다. 소규모 다품종 생산을 지향하는 장인들에 의한 네트워크와 유연하게 변화하는 도시구조, 낡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지역이 갖고 있는 특색 있는 자원들에 기반한다. 이러한 로컬 구조를 창의적으로 재활용한 카페·레스토랑·독립서점·게스트하우스·편집숍 등의 상권을 만드는 창의적 크리에이터의 활동은 지역의 매력을 창출하며 더 많은 청년과 사람들을 유인하고 관계인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워케이션(Worcation)은 일터와 휴가가 결합된 합성어로 휴양지에서 여가와 함께 근무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상문화이다. 워케이션은 ICT 근무환경에 기반한 디지털 노마드 취향의 스타트업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낯선 장소에서 여가와 결합하여 일의 능률성과 창의성을 도모한다. 따라서 워케이션의 최적지는 어느 정도 대도시와 접근성이 있고, ICT 기반이 갖추어져 있으면서 자연친화 및 감성적 공간과 경험을 제공하는 지역이다. 현재 다음카카오를 비롯하여 네이버, 라인플러스, 당근마켓 등 IT 공룡들도 동참하고 있으며 이를 유치하기 위해 제주도를 비롯해 통영, 거제, 목포, 강원, 충남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워케이션은 대표적인 관계인구 유입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역문화진흥원과 충청남도관광재단의 워케이션 업무협약식 ⓒ충남관광재단
‘창의적 계층’으로서 로컬 크리에이터의 탄생
이처럼 최근 로컬 지향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도 크다. 팬데믹의 장기화는 국제교류를 막아섰고, 원거리 이동과 대도시 집중화에서 근거리 기반의 지역상권과 공간으로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유인했다. 결과적으로 팬데믹에 의한 이동 제한은 지역 차원에서 매력을 알릴 수 있고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기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와 더불어 지방 한달살기와 같은 다양성 추구와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의 확산은 MZ세대 중심으로 지역의 창의적 공간을 탐색하도록 유인했다. 지방도시들은 지역성(Locality)을 확보하기 위한 특색화를 몰두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회는 일반적 자산을 창의적 자원으로 탈바꿈해주는 예술가들을 비롯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탄생을 견인했다. 이러한 현상은 20여년 전 리처드 플로리다가 주장했던 가히 창의적 계층(Creative Class)의 한국판이라 하겠다.
현재는 정주인구 늘리기와 산업단지 개발을 통한 기업유치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과거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작동되지 않는 시대이다. 효율성과 성장주의 기반의 물질주의적 사고는 관계성, 다양성,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지역의 인구감소 극복을 위한 정책적 방향은 외부인 및 지역 주체들의 관계 형성에 기반한 창의적 노력과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고향사랑기부제도는 타지역 주민에게 기부의 효능감을 높이는 방안에 주력해야 하며, 로컬의 창의적 활동이나 워케이션 또한 매력 있는 창의적 공간으로 방문과 관계를 유인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지원 또한 로컬의 이러한 창의적 노력과 활동의 정책지원 구조를 지향한다. 결국 관계인구의 형성은 지역과 관계를 맺고 싶은 외부인들의 동기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이제는 외부의 시선에서 우리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으로 인식되는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파이낸셜 뉴스(2021.6.23.)
ⓒ㈜퍼즐랩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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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