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 봄호_짚다
짚다 : 펄떡이는 로컬 현장의 맥을 짚습니다
탄광촌 사라진 자리, ‘문화광산’ 꽃피우다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에 탄광을 개광한 영월은 ‘동네 개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1970년 당시 영월의 인구는 12만 명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썰물 빠지듯 인구도 줄어들었다. 현재 인구 3만 8,000여 명에 불과한 군소도시 영월이 지난해 12월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국내 산업화를 이끌었던 석탄 광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리에 ‘문화광산’이 비집고 들어선 것. 산업의 쇠퇴와 고령화로 활력이 떨어진 강원도 영월이 문화도시로 선정된 배경 뒤에는, 지역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자 발 벗고 나선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를 이끄는 핵심 인물인 이효정(오른쪽) 전 회장과 한우석 신임 회장(왼쪽)을 영월관광센터에서 만났다. Ⓒ심민아
두 사람은 문화불모지인 영월에서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생활문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민·관에 주지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심민아
이제 만나러 갑니다
38417. 암호처럼 나열된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이자 영월의 인구수라고 귀띔해줬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이하 ‘생문연’)의 대표 사업인 <38417 이만갑(이제만나러갑니다)>은 영월군민 3만8,417명 모두가 일상 속 생활문화 격차를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2021년 ‘지역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세로로 좁고 가로로 긴 영월의 지형적 특성과 영월읍에 집중된 인구 편중으로 지역 간 문화적 불균형을 겪어왔어요. 문화 소외 지역인 상동읍에 찾아가 지역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죠. 문화 편차 해소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께 내가 가진 재능과 노하우를 나누는 거죠.” 생문연을 7년여 간 이끌어온 이효정 전 회장이 산악 지형이 많은 강원도의 지리적 특성과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해 문화 생태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하자 지난해 바통을 이어받은 2대 회장 한우석 씨가 설명을 보탠다.
생문연 활동 이전에 10여 년간 ‘영월군 평생학습동아리연합회’를 이끌었던 그녀는 동아리 회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 역할을 해준 것이 생문연이라고 말한다. Ⓒ심민아
2017년 생문연과 인연을 맺은 한우석 회장은 이후 2018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성화사업-장터노래방’에서 덕포5리 반장으로 참여하며 주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심민아
“마을분들은 작은 선물과 공연, 소소한 놀이에도 행복해하세요. 특히 문화 소외 지역의 어르신들은 외로움 지수가 높은 편인데,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시죠. 문화가 마을로 찾아가면, 바깥 외출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도 콧바람을 쐬러 나오시고, 그렇게 소통이 이루어지죠.”
‘38417 이만갑’ 사업은 적적하게 지내는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활동’이라는 이들의 말에 공감의 끄덕임이 터져 나왔다. 집 담벼락에 걸린 고전 명화 전시를 보러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선 할아버지, 마디마디 굴곡진 손으로 만든 스카프를 두른 할머니의 얼굴에서 행복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꽃 화분과 디퓨저를 만들면서 고된 농사일을 잠시 잊는가 하면, 영월 출신의 경기 민요 전수자 안태수 선생의 민요 열창에 한껏 흥이 오르기도 했다. 생문연이 쏘아올린 생활문화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주민들에게 번져나갔다.
“강원도 전역이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제 활동의 축소만 있을 뿐, 지역은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고 봐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그 해법이죠. 결국 마을공동체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에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효정 전 회장은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한 2021년 ‘지역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에 2년 연속(2022년 협력형) 선정되면서, 지역 문화편차 해소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영월이 ‘문화도시’로 선정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2021년에 ‘38417 이만갑’을 준비할 때만 해도 영월의 인구수가 3만8,417명이었는데, 현재(2023년 2월 기준) 3만7,561명으로 줄었어요. 영월군은 인구 소멸 문제를 주민들이 먼저 자각해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찍이 생겨났죠. 이것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점인 것 같아요.” 한우석 회장은 ‘38417 이만갑’ 사업이 주민들의 높은 참여와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 ‘37904 또만갑(다시 또, 만나러 갑니다)’으로 이어졌지만, 1년 사이 500여 명 가량 인구가 줄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38417 이만갑' 사업은 지역 단체와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에 1번, 연대 협력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활동을 이어갔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문화 소외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를 생활문화 활성화로 접근한 ‘38417 이만갑’, ‘37904 또만갑’ 사업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다양한 생활문화 활동을 알리는 ‘38417 이만갑’ 포스터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운학삼돌이마을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이때에 귀촌인의 이주로 행복해하는 마을이 있다. ‘박힌 돌(원주민)’, ‘굴러온 돌(귀농귀촌인)’, ‘굴러올 돌(예비 귀농귀촌인)’이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운학삼돌이마을’은 삼돌이가 함께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이루자는 바람을 담고 있다. 삼돌이들은 세월에 이리저리 구르면서 모나고 각진 부분이 다듬어졌고, 현재 마을 구성원의 80%가 인생 2막을 꿈꾸며 귀촌한 굴러온 돌이다.
“운학삼돌이마을은 과거 영월에서 가장 사람 간 갈등이 심한 곳이었어요. 경관이 수려하고 인구 유입이 많아 15여 년 전부터 귀촌이 차츰 이루어졌는데, 살아온 환경과 직업, 문화가 달라 융화되기 쉽지 않았죠. ‘굴러온 두 돌’ 안충선 이장과 안승배 사무국장이 귀촌하면서 문화조력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죠. ‘삼돌이’를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중론이 모아지면서 마을 분위기도 싹 달라졌어요.” 귀촌 붐이 일었던 초기, 문화불모지 영월에서 ‘생활문화 선구자’로 변화를 주도해 온 이효정 전 회장이 당시를 떠올리며 조곤조곤 설명한다. 주민 스스로가 문제점을 자각해 갈등 해소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열었고, 주민들이 배우가 되어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마을 무대에 올렸다. 이것이 생활문화의 시작이었다.
운학삼돌이마을은 2021년 ‘지역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에 2년 연속 활동그룹으로 참여하면서 삼돌이의 가치를 브랜딩했다. 2015년부터 가을마다 <삼돌이 축제>를 개최하며 이웃과 정을 나누고 있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뿔뿔이 흩어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준 건 바로 동호회 활동. ‘소온뜨개방’ 회원들은 손수 털목도리를 만들어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기증했고, 사물놀이와 그림책 만들기 동호회 등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주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르신 인생 그림책’은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생활문화활동으로, ‘굴러온 돌’ 이정해 작가의 지도 아래 주민들이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직접 글과 그림으로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저도 영월읍에 정착한 지 14년 된 ‘굴러온 돌’입니다. 생문연에서 문화활동가로 일하다 보니 한두 사람이 곁을 내주게 되었고, 이제 읍에서 제 이름을 모두 알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죠(웃음). 영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주민 모두가 함께 어울려 행복할 수 있는 문화활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농촌마을의 새로운 공동체문화를 구축한 운학삼돌이마을은 다른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수상까지 이어졌다고 한우석 회장은 덧붙인다. 지난해 9월 ‘제9회 행복 농촌만들기 콘테스트’ 마을만들기 문화·복지 분야에서 금상(국무총리상)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나눴다.
“극심한 갈등을 겪은 마을 중에 덕포4리와 5리도 빼놓을 수 없어요. 마을 문제를 생활문화 공동체로 풀어보자고 해서 시작된 사업이 ‘할망-할아방의 온마을운동’이에요. 3년 간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힘에 부쳤지만 나중엔 보람이 더 컸어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다함께 운동으로 하루를 여는데 이분들에게는 대낮인 거예요. 게을렀던 절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할망-할아방의 온마을운동’ 포스터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덕포리 할머니들은 다같이 모여 새벽 운동을 하고 그림 그리기와 꽃꽂이를 통해 일상 속 문화생활을 즐겼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덕포리는 영월 오일장이 서는 곳이자 동강과 서강의 합수머리여서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고 말하는 이효정 전 회장은 마을 어르신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굿 리스너가 되려고 노력했다. 쓰레기 불법 투기가 고질적으로 이뤄지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는 민원에 꽃을 심어 아름다운 화단으로 가꾸기도 했다. 화합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을 어르신 협동조합을 조직했고,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레시피 대전’도 화합을 이끄는 데 주효했다.
덕포리에서 열린 ‘레시피 대전’ 포스터. 동네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한 할머니들을 모셔다 요리 대결을 펼쳤는데, 음식 냄새가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좋아서 하는 동호회 활동
2015년에 발족한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는 2016년 문화가 있는 날 생활문화 동호회 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본격화됐다. 그 후 2019년 생활문화 공동체 만들기 ‘할망-할아방의 온마을운동’을 진행하며 주민들에게 찾아가는 문화생활의 기회를 제공했고, 어르신문화프로그램 ‘문화로 청춘’을 통해 ‘100세 나빌레라’ 사업을 펼쳤다. 강원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삼삼오오 인생나눔활동’의 거점 운영기관으로 선정돼 활동 그룹을 지원했으며, 2021년부터 2년간 ‘지역형(협력형)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시범) 사업’을 진행해 9개 읍·면 구석구석에 문화의 영향력이 흘러갈 수 있도록 지역과 사람을 연결해왔다.
생문연이 그동안 축적해온 전문성과 재능나눔은 2020년 ‘제3회 깨비 할로윈’ 축제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단종이 잠든 장릉에서 개최된 핼러윈 축제는 지역 예술인이 펼치는 문화예술공연 <깨비깨비 봄도깨비 버스킹> 등 다양한 볼거리로 시선을 끌었고, 생활문화인들이 손수 만든 핸드메이드 상품은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단종이 승하한 지 566년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제사만 지내왔어요. 아이들이 핼러윈 복장을 하고 무덤 아래 정자 앞에서 팝송에 맞춰 런웨이를 하게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같은 또래 친구들이 왔으니 단종도 좋아서 벌떡 일어났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죠(웃음). 2019년엔 영월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축제가 열렸는데, 영월문화재단 국장님께서 재단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인원이 운집한 건 처음이라며, 땅이 1센티미터는 꺼졌을 거라고 하셨어요.”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선을 끌 만한 문화 콘텐츠가 약한 영월에서, 이색 문화 체험을 통해 행복 에너지를 충전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생문연의 역할이라고 한우석 회장은 말한다. 이런 활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2021년 12월, 지역 내 생활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가 있는 날’ 운영 우수 민간단체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색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었던 ‘깨비 할로윈’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김삿갓문화제의 대미를 장식한 단종국장 야간재현행사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그동안 마을의 크고 작은 축제와 행사에 개막 공연이나 버스킹 무대를 주관하며 지원 사격을 해왔지만, 운영 지원을 통째로 맡은 건 지난해 9월에 열린 <김삿갓문화제>가 처음이었다.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행사로, 사흘간 1만5,000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문화제 마지막 날인 10월 2일에 열린 단종국장 야간재현 행사의 진행 지원을 맡았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관풍헌에서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릉까지 퍼레이드가 이어졌고, 단종의 탄생과 즉위, 유배, 영월에서의 생활 등을 다양한 영상과 퍼포먼스로 선보였다. 해마다 운영 지원을 맡게 되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가는 ‘같이’의 가치
폐광으로 인해 문화적 활력이 떨어진 영월에서 이들이 붙들었던 건, ‘함께’ 가는 ‘같이’의 가치다. 주민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공동체를 일구며 마을을 일터로 만들고, 다양한 영월지역 활동그룹과 연계해 주민 주도의 생활문화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저마다의 예술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문화활동가들이 생문연 안에 포진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운학삼돌이마을’의 변화를 일군 능력 있는 문화기획자 안승배를 비롯해 사진예술공간 ‘사소한 기록소’를 운영하는 사진가 유병현, 다양한 음악공연이 펼쳐지는 ‘살롱더스트링’의 대표이자 싱어송라이터 변선희, 문턱 낮은 주민참여형 방송 ‘영월FM공동체라디오’의 홍성래, 문화소외지역에서 어린이들의 문화활동을 돕는 극단 ‘시와별’의 상지윤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영월의 생활문화를 이끌고 있다. 분야가 다른 만큼 공유되는 내용도, 생각도 다르지만, 목표는 분명했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그 안에서 좋은 에너지를 나누며 건강한 생활문화를 만들자는 것.
한우석 회장은 “생문연에서 독립시킨 문화기획자가 족히 서른 명은 넘어요.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동호회는 30~42개팀 정도 되고, 한 팀당 10여 명으로 꾸려지니 어림잡아 400명 안팎의 생활예술인이 활동 중입니다. 이들 중 실력을 갈고닦아 전문예술인으로 육성시켰고, 2019년 극단 ‘동강’에 이어 2021년 지역 가수 ‘유랑노래단’도 발족했어요”라고 설명한다. 2021년엔 ‘다가치협동조합’을 발족해 지역 청년 크리에이터와 협업으로 영월 캐릭터를 살린 로컬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셈이다.
생문연의 전문예술인으로 구성된 ‘유랑노래단’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살롱더스트링의 버스킹 공연. 자연에서 듣는 음악은 더 달콤하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함께’의 가치에 주목해 온 생문연은 생활문화가 일상에서 확산되기 위해 지역의 문화활동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해왔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이효정 전 회장은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영월에선 주민 참여 의지가 높았어요. 주민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동호회가 자생하고, 타 단체와 연대 협력을 통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생문연이 발족한 뒤 남부 지역에서도 비슷한 생활문화동호회가 생겼고, 요즘 붐이 일어나 여기저기서 동호회연합회가 생겨나고 있어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의 발로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는데, 영월에서는 동호회라는 형태로 꽃을 피웠고, 사람의 마음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즐겁고 즐겨야 한다
‘사소한 기록소’에서 진행하는 ‘느슨한 영화제’는 주민 간의 농밀한 소통이 이뤄지는 생활문화활동 중 하나다. 영화를 관람한 뒤 초빙한 영화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정량적 평가에 기준을 맞추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됐고, 개인의 취향이 얼마나 소중한지,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해석할 때 어떤 효과가 발휘되는지,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정성적 평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생문연의 지난 활동이 생활문화 저변확대와 조례 제정의 발판이 되었다면, 이제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생활문화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개인이 일상에서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고 이를 공동체로 이끌어낼 때 살기 좋은 문화도시가 탄생한다고 봅니다.” 결국 문화란 어떤 형태든 내가 즐겁고 즐겨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한우석 회장은 말한다.
<느슨한 영화제>를 알리는 포스터.
영화를 관람한 후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클럽모임을 통해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영월군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연합회
2021년에 생긴 그림책 연구회 ‘별숲’은 단순히 그림이 좋아서 모이던 소그룹에서 1년 뒤 심화 모임으로 확산되더니 현재 영월 내 그림책 동호회를 여럿 낳았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 결과물이 확산 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지만, 일상 속 문화활동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월은 ‘검은 노다지’를 캐던 ‘까막 동네’의 옛 영광을 뒤로 하고, 빛나는 문화도시로 다시금 도약 중이다. 지역 주민 모두가 일상에서 생활문화를 누리고 건강한 마을 공동체가 곳곳에 뿌리내리려면, 생문연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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