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년 봄호_만나다
만나다 : 사람을 통해 지역문화를 만납니다
‘구미의 반전, ‘이 서점’이 있는 도시라면
삼일문고가 문을 열었던 첫해의 김기중 대표 ⓒ삼일문고
“아이고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인데.” 겸양과 폄하 사이에 놓여 있는 이러한 반응은 유럽의 소도시든 대한민국 소도시든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고장은 별 볼일이 없다는 주장인데, 이렇게 웅크린 환대를 만날 때마다 방문자는 공연히 겸연쩍어진다.
구미의 겸양은 사뭇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오히려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려는 내정한 인정으로 느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구미에는 진짜 뭐가 없어요!’라고 말했고, 시청 공무원부터 주부까지, 토박이부터 이주민까지, 옆에 선 이가 누구이든 토 달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겸양이 아니라 체념과 수긍이다. 내륙 최대의 산업도시로 성장하고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 온 이 도시가 기울어진 날개로 도착한 오늘의 풍경이 ‘삭막한 산업도시’의 그림자속 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중병을 얻은 환자처럼, ‘그래 정말 구미엔 별것 없나 봐~’라는 인정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삼일문고’를 발견했다. 구미를 서점 하나 없는 도시로 만들지 않겠다는 김기중 대표의 의지 하나로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는 대도시에서도 서점들이 픽픽 쓰러져 가는 시대에 큰돈을 들여 빌딩 전체를 서점 맞춤형으로 설계하고 보수했다. 수년간의 적자를 견디면서 타들어 가는 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재밌다’고 말한다. 김기중 대표에게 삼일문고는, 희소난치병을 앓으며 그가 깨달았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실천이자, 지역이라서 가능하다고 믿는 도전이다. 삼일문고는 존재 그 자체로 구미의 문화적 풍경을 바꾸었고, 도시 전체에 끼친 나비효과도 상당하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세상이듯, 하나의 서점은 하나의 은하계가 될 수 있음을, 삼일문고가 보여주었다.
빨간 벽돌을 선택한 이유는 벽돌 하나하나가 책을 닮아서다 Ⓒ삼일문고
노후된 원도심에 들어선 서점 하나는 지역의 분위기를 확 바꾸었다 Ⓒ삼일문고
서점 하나 없는 도시엔 살기가 싫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4년 춘양당서점의 폐업이었다. 60년 이상 명맥을 이어왔던 구미 최대의 서점이 사라진 것이다. 5~6개에 이르던 서점이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춘양당까지 문을 닫자, 김기중 대표는 화가 났다. “처음에는 원망했어요. ‘아~ 돈 좀 못 벌더라도 그냥 하지!’ 그랬죠. 하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서점 접고 세만 놓아도 월세 2,000만 원을 벌 수 있거든요. 그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서점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죠. 어느 순간,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들도 일어났고요.”
그는 서점 하나 없는 도시에 살고 싶지 않았다. 참고서 서점만 있는 도시라니, 끔찍했다. 자신이 서점에서 느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을 구미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며 자라게 될 것도 싫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이 더 커졌다. 물론, 두려웠다. 당시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구미에서 가장 큰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누렸던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평생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를 포함해 주변의 반대와 우려도 컸다. 일단 서점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하고, 떠났다.
김기중 대표는 이후 2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외에 나가 200~300개 서점을 답사했다. 자전거 대회에 출전한 후 시간을 만들어 이름을 대면 알만한 해외의 유명서점과 책마을을 모두 방문했다. 책임감에서 시작된 ‘짐’스러운 마음은 점점 꿈으로 변해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 서점가에도 작은 지형 변화가 보이던 시점이었다. ‘땡스 북스’, ‘북 바이 북’ 등의 독특한 서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도서정가제가 안정되면서 독립출판이 늘고 동네책방 붐도 불었다. 서점은 책을 읽고 사는 공간에서 확장되어, 다양한 콘텐츠와 독서 문화의 근거지가 됐다.
삼일문고의 커다란 회전문은 또 다른 세계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삼일문고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특히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했다 Ⓒ삼일문고
광택을 없앤 서점, 구미에 심은 꿈
2014년 구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은 핸드폰 대리점이 되었지만, 2017년 구미에서 가장 유명한 핸드폰 대리점이 반대로 서점이 되는, 기막힌 운명의 교차가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일단 서점이 예뻐야 한다는 것, 그리고 큐레이션을 잘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재생에 관심이 많았던 박창현 소장(에이라운드건축)이 설계뿐 아니라 직접 시공까지 맡아 주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 빨간 벽돌로 외관을 쌓고, 강의와 모임을 할 수 있는 숨은 공간을 곳곳에 두었다. 1층에는 단행본과 카페, 계단 층 사이에는 큐레이션 한 북들을 전시하는 코너를 두었고, 지하층은 만화, 동화책 등 아동서적 전문으로, 2층은 학습서 전문관으로 꾸몄다. 서가, 매대, 테이블과 의자 등은 평소 좋아했던 가구 브랜드 ‘아이네클라이네’에 요청했다. 처음부터 책만 보고 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서점을 원했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공간이 아니라 책을 주인공으로 두기 위해 모든 광택을 다 지웠어요. 빛나지 않는 공간이지만 힘을 주는 곳! 시민들에게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김 대표는 다짐했던 3가지를 모두 지켰다. 아름다운 서점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북 큐레이션은 직접 한다. 전에는 다독가였는데, 지금은 속독가가 됐다. 처음에는 강사 섭외, 참가자 모집에도 어려움을 겪었으나 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계기로 전환점이 생겼다. 차츰 삼일문고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문학계와 인문학계의 명사들을 구미로 초청하기가 쉬워졌고, 지금은 고정적으로 삼일문고의 활동에 참여하고 지지하는 누적 회원들이 꽤 확보된 상태다. 커뮤니티에 대한 다짐까지 그렇게 틀이 갖춰져 왔다.
김기중 대표는 현재 한국서점인협의회 콘텐츠 위원장을 맡아서 단행본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역에서도 단행본이 잘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참고서 판매 축소로 위축되는 서점 운영에 숨통을 틔워주고 싶다. 구미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지난해에는 지역의 작가들을 모아 구미를 소개하는 책 <우리동네, 구미>도 펴냈다. 이주민이 80%인 도시에서, 도시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알리는 일은 더 중요하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어머니에게 서점운영과 관련해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미국에서 기술을 배워 온 아버지는 1970년 구미역 앞에 제일전파사를 열었다 Ⓒ삼일장학문화재단
1970년대 구미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경북에서 가장 성공한 가전 대리점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삼일장학문화재단
1991년부터 삼일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해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은 2000년도 장학문화상 시상식 모습 Ⓒ삼일장학문화재단
아버지와 아들의 ‘되돌려 주기’
김기중 대표의 아버지는 삼일장학문화재단의 김한섭 이사장이다. 1941년 김천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님을 잃고 어렵게 자랐다. 20대 군인이 되었다가 미국으로 건너갈 기회가 생겨 6년간 군복무를 하면서 야간에 기술을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에 밑천도 없이 구미역 앞에 천막을 치고 제일전파사를 시작했다. 뭐든 고치고 아껴야 했던 시절이라 손님이 많았다. 구미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유입 인구가 많을 때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대구 경북에서 가장 큰 삼성전자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연 매출 200억, 직원도 70명에 이르렀다. 여윳돈이 커지자 아버지는 88년 서울올림픽 즈음 서울 부동산에 투자에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당시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었던 첫째 아들이 크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 방향의 부의 축적을 원치 않는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결국 계약을 물리고 구미로 다시 돌아온 아버지는 1991년 10억을 출연해 삼일장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매년 1억씩 기탁해 수십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1973년생인 둘째 아들의 삶은 달랐다. 김기중 대표는 23살에 베체트병이라는 희소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치료와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피닉스에 갔다가 구미로 돌아왔을 때가 20대 후반이었다. 귀국 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15년 동안의 투병으로 몸무게가 크게 늘면서 건강관리를 위해 라이딩을 시작했다. 10년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입상을 거듭했고, 철인삼종 경기까지 도전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201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힘들다는 자전거 레이스, 4,810km의 미국을 횡단하는 램(RAAM)을 참가해 ‘50세 이하 2인조 남자‘ 부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행복한 고통(김기중, 글로세움)>이라는 에세이로도 펴낸 이때의 경험으로 김 대표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내 힘으로 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 거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관계 속에 있는 나를 느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고, 저를 지탱하고 성장하게 해 주었던 책과 영화 같은 문화적 경험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살 수도 있었고, 미국에서 취업해서 살 수도 있었겠지만, 낯선 도시에서 외부인으로, 이방인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달랐다. 특별한 애향심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있었다. 구미가 쇳소리만 나는 도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여기도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문화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삼일문고는 아들 김기중이 원했던 ‘되돌려 주기’ 방식이다. “장학사업을 30년 했는데, 예전만큼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어요. 하지만 책과의 만남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일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죠.”
김기중 대표는 지금도 책 큐레이션을 직접 한다 Ⓒ천소현
2011년에 RAAM에 2인조로 참가해 완주했고, 2년을 더 준비해 2013년에는 1인 부분에 도전했다. Ⓒ삼일문고
MTB를 타고 호주의 오지를 달리는 크로커다일 트로피에 참가 중인 김기중 대표 Ⓒ삼일문고
서점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김 대표에게 서점업은 수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 아니다. 서점 그 자체가 목적이다. 서점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흑자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핸드폰 대리점을 병행하면서 많을 때는 한 달에 2,000만 원에 가까운 적자를 메웠지만, 차츰 수익이 나아지면서 핸드폰 사업을 접었고, 5년 차부터는 많지 않아도 서점 운영만으로도 흑자를 내고 있다. 개점 때와 비교해 매출이 3배 정도 늘었다.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점 운영을 반대했지만, 늘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들이 있다. 부모님은 물려주신 건물도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고, 형님은 상속 주식을 양보해 주었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서점의 시간을 생각하면 재정적인 부분은 여전히 숙제다. 하지만 구미 인구가 40만 명 정도이니 그중 5~10% 정도만 찾아와도 서점은 유지될 수 있다. 10%라고 하면 적지만 4만 명이다. 현재 삼일서점은 현재 경북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이다. ‘노동자가 책을 읽겠나?’라고 사람들은 묻지만, 그는 ‘구미에 학교가 몇 갠데요.’라고 대답한다. 서점 하나는 유지시킬 구미 인구의 힘을 믿는다. 주말에는 인근 도시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삼일문고는 지역 재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쇠락한 금오시장 근처에 삼일문고가 문을 열자, 노후 된 혐오지역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노인들만 간간이 오가던 원도심의 골목에 은행이 다시 문을 열고, 카페가 생기고, 방치됐던 노후 건물들도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2019년 유현준 건축가와 진행했던 북토크 Ⓒ삼일문고
2021년 이병률 시인과의 만남 Ⓒ삼일문고
2019년 아이들이 많이 참석했던 박정섭 동시집 발표회 Ⓒ삼일문고
지역이라서 꿈꿀 수 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지역이라서 꿈꿀 수 있다’는 거예요. 수도권에 이런 규모의 서점을 유지하는 건 더 어려워요. 월세가 너무 높으니까요. 오히려 지역이라서 경쟁 없이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 유리한 점도 있어요. 삼일문고는 구미라서 할 수 있었고, 고향이라서 해야 할 이유도 있었어요. 서점에 대한 비전은 지역에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는 부분이죠.”
서점을 열기 전에 자신감을 준 곳은 일본 홋카이도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이다. 1967년에 개장했지만 점점 관람객이 줄어서 폐장 위기에 처했다가 ‘동물원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원점의 질문으로 돌아가 고심한 끝에 본능과 습성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행동 전시’를 창안해 일생에 꼭 한번 방문해야 하는 동물원 명소가 된 곳이다.
“직접 가보니 동물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동물원이었어요. 끝났다고 생각한 비즈니스도 다시 보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곳이요. 이렇게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물원이 인구 30만 명의 작은 도시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지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인 것 같아요. 이상적인 서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서점이 살아남을 길도 보일 겁니다. 제가 좀 낙천적이긴 하죠(웃음).”
인터뷰 끝에 그는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해요. 보통 사람이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지난해 지역이 출판사 5곳이 의기투합하여 <어딘가에는 ○○○이 있다> 시리즈를 출판했다. 옥천, 통영, 대전, 고성, 순천에 위치한 다섯 로컬 출판사가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 등 각자의 자리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삼일문고에서도 이들과 연대하여 홍보 행사를 진행했었다. 여전히 삼일문고 지하 1층에 크게 붙어 있는 시리즈 홍보 포스터 앞에서 생각했다. 구미에 <어딘가에는 ○○○이 있다> 시리즈가 나온다면 그건, 단연코 삼일문고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구미의 자랑을 찾기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구미에는 ‘삼일문고’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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