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이사. Ⓒ해녀의부엌, 한예종에서 연기를 공부한 그녀는 고향 종달리에서 제주 해녀의 이야기로 극장식 레스토랑을 열고 직접 연기도 했다. Ⓒ해녀의부엌, 공적인 로컬 창업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해녀의부엌
먹먹했다. 두어해 전 처음 ‘해녀의 부엌’ 공연을 보았을 때 울렁울렁 멀미처럼 코끝 시린 감동이 찾아왔었다. 이심전심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해녀의 부엌은 금세 입소문 타고 제주 추천 1순위 여행코스가 됐다.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로컬 크리에이터의 창업 성공사례로도 급부상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는 2호점을 오픈했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주)해녀의부엌 이야기라면, 아궁이 속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해녀의 부엌’은 문화예술이 다른 산업군(群)을 만나서 파생되고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모델이다. 고객이 구입하는 것은 두어 시간의 공연과 식사의 입장권이지만, ‘해녀의 부엌’이 공연의 이면에서 프로모션하는 것은 뿔소라로 대표되는 해녀의 해산물이다. 하지만 더 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것은 제주 문화의 힘이고,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는 감동과 치유다. 더 넓게 보면 제주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세계로 알리는 제주 브랜딩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
이 비전을 공감해야 ‘해녀의 부엌’의 궤적을 촘촘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해녀의 부엌은 문화예술 기반의 로컬 크리에이터로 시작해 초기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이제 시리즈A를 목적에 둔 우량 스타트업이다. 극장식 레스토랑 사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그것도 제주에서 (주)해녀의부엌을 꾸려나가고 있는 대표 부어커, 김하원 씨를 만났다.
해녀의부엌 북촌점에서 해녀 어멍이 뿔소라를 손질하고 있다. Ⓒ김민수
북촌점에서는 미디어아트와 코스 요리로 특별한 음식 경험을 제공한다. 뿔소라죽과 제철회. Ⓒ김민수
해녀의 해산물, 비로소 ‘제값’ 받기
‘해녀의 부엌’은 공연과 식사를 결합한 문화예술관광 상품이지만 알고 보면 의외의 슬로건을 품고 있다. ‘뿔소라를 전 세계의 식탁에 올리자’는 것이다. 계기는 지역의 문제 인식이었다. 이모, 고모, 큰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종달리의 해녀인 김하원 대표는 어느 날 뿔소라가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반면 내수가 없어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제주 해녀들이 겪고 있는 오랜 어려움이었다.
“뿔소라가 자연산인데도 골뱅이 통조림과 비교되곤 했어요. 전복에 비하면 가격이 10분에 1이고요.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가치 제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뿔소라가 ‘귀한 거야, 비싼 거야’가 되는 순간 기업들도 뭔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김 대표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제주를 떠나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녀의 부엌’은 그렇게 시작됐다. 종달리 해녀 어멍의 이야기를 극화한 공연과 해녀가 직접 설명해 주는 해산물 이야기에 정성껏 요리한 해녀의 밥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공연의 영향이었을까, 3년 전과 비교하면 뿔소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올해 3월에는 동원 ‘더 반찬’과의 컬래버로 ‘해녀의부엌 뿔소라 미역국’과 ‘해녀의부엌 군소 양념무침’ 밀키트를 출시했다. 동원에서 제조와 유통을 맡고, ‘해녀의 부엌’은 원재료와 브랜드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의 식탁에 가 닿을 수 있는 식품 개발 유통과 e커머스도 중요한 비즈니스의 축이다. 적어도 이 유통 구조 안에서 해녀의 해산물들은 ‘제값’을 받고 있다.
해녀의부엌은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 성공 사례로 강의 요청을 자주 받는다. Ⓒ해녀의부엌
해산물 판로와 관련된 해녀 공동체와 지역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간 덕분이다. Ⓒ해녀의부엌
팬덤이 있는 진짜 브랜드 시대
말하자면 ‘해녀의 부엌’은 태생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문제를 발굴해 기업 활동으로 개선해 나가는 ‘임팩트 기업’이었던 셈이다. 로컬 콘텐츠 창업은 반드시 지역민들을 먼저 만나 소통한 후에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사실 처음 ‘해녀의 부엌’을 기획했을 땐 부모님조차 ‘누가 해녀를 보러 여기까지 오겠나, 누가 이 시골에 와서 밥을 먹겠나’라고 했었다. 하지만 20년간 방치됐던 위판장에 사람들이 모이자 주민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처음부터 바랐던 것이, ‘해녀의 부엌’이 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는 거였어요. 동네에 관광객들이 오면 해녀 할머니들이 손을 잡고 여기로 데려오는 장면을 상상했었죠. 이제 실제로 버스를 놓친 손님을 마을분이 트럭으로 데려다 주시기도 하고, 공연 날 주차장에 차가 몇 대 있는지가 마을 어르신들의 관심사이자 낙이 되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드는 지역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다. ‘해녀의 부엌’의 경우 극장 레스토랑 자체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사업이지만, 팬덤이 있는 브랜드를 구축하기에는 유리했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기업의 철학과 가치관이 얼마나 얕은지 깊은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제주의 이미지만 차용하던 대기업들도 이제 생산자의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며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직한 팬덤이 구축된 로컬 브랜드, 검증된 브랜드에 손을 내밀고 있다. ‘진짜’들이 매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북촌점 로비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김민수
고급스럽게 제주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프라이빗 서비스로 전환했다. Ⓒ김민수
제주 식문화를 알고 먹으면 모든 음식이 특별해진다. Ⓒ김민수
코로나가 쏘아올린 2호점
2021년 11월, 종달리 본점 외에 북촌점을 오픈했다. 공연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던 코로나 시기에 오히려 확장을 준비하고 감행한 것이다. 본점에서 진행되는 ‘해녀이야기(뷔페식)’와 ‘부엌이야기(한상차림)’가 해녀 어멍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연으로 치유의 경험을 준다면, 북촌점은 미디어아트와 파인 다이닝을 결합한 미디어아트 레스토랑(코스요리)으로 고급스러운 식사에 중점을 뒀다. 가격이 높더라도 소수의 인원이 식사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가질 수 있는 프라이빗 서비스로 전환한 것이다.
“2호점은 무조건 공항에서 차로 20분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종달리가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라면 북촌은 제주에 온 귀빈들이 가볍게 들를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반응을 들어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에는 본점을 추천하고, 본인이 남자친구와 온다면 2호점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북촌점의 요금은 1인당 거의 9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20대 초반들도 예약을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어진’ 세상에서 앞으로 과연 무엇이 돈이 될 것인지를 묻는 창업자에게 김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돈이 될 수 있다!’고. 이 확신은 창업 전 서울에서 강남 아이들을 위한 놀이교사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나왔다. 애정 결핍으로 이상 행동을 하던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게 보였다. AI나 로봇, 비대면이 중요해질수록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순수한 교감과 애정’이 더 중요해지고, 사람들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돈을 쓰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녀는 당시 평균적인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5배 이상을 벌었다. ‘해녀의 부엌’도 마찬가지다. 허름한 창고에 기업의 회장님들이 와서 엉엉 울고 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문화콘텐츠’라고 하면 ‘돈이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세상을 바꾸고 돈을 쥘 수 있는 키를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요! 그러니 재능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요.”
해녀의 부엌 베타 공연을 연습 중인 연기자들과 해녀 어멍. Ⓒ해녀의부엌
종달리 본점에서는 ‘해녀이야기’에 이어 ‘부엌이야기’ 공연을 선보였다. Ⓒ해녀의부엌
출신이어서, 출신이 아니라서
로컬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태왁1 하나에도 해녀의 이야기가 있다. 또, 로컬은 문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대와 트렌드에 껴 맞춘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문화를 로컬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다. 김 대표는 제주에서 강의를 하다가 종종 제주도 청년 창업자들에게 쓴소리를 하게 된다. 제주도 자원의 가치를 가장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제주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육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제주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원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을까?’
해녀도 그러했다. 해녀를 콘텐츠로 다룬 시도들은 많았지만, 늘 ‘왜 저렇게 하지? 내가 경험한 해녀는 저런 모습이 아닌데…’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같은 해녀라고 해도 90대 해녀와 60대 해녀의 삶의 만족도는 완전히 다른데, 해녀들이 왜 지금의 모습인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빠져 있었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 어멍과 한 달 정도 인터뷰 과정을 거쳐서 총 5편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공연을 위해 기승전결의 포맷이 있지만 일부러 감정선을 만들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해녀 그 자체의 이야기일 뿐이다.
로컬에는 문화와 콘텐츠가 있지만 펼쳐 낼 인재가 부족하다. 좋은 인재들이 내려와 애를 쓰다가도 배타적인 분위기에 지쳐 떠나가는 경우도 보았다. 김 대표가 종달리 출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로컬 콘텐츠 사업에서 ‘출신’보다 중요한 것은 버텨내는 책임감과 노력이다.
“출신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과연 내가 여기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 만큼의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진짜 고비가 많았거든요. 어디 출신이건 일단 오게 되면 지역에 상주하면서 상당한 노력을 쏟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건물만 새 걸로 만들어주고 끝나 버리죠. 마을 사람들은 그 건물을 운영할 수조차 없어요. 제가 만약 다른 지역에 가서 뭘 한다고 해도 적어도 5년은 꾸준히 시도할 거예요. 1~2년 안에 세팅한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해녀 어멍에게 직접 묻고 듣는 제주 해녀이야기. Ⓒ김민수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온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한다. Ⓒ김민수
미디어아트와 접목하면서 새로운 도약이 가능해졌다. Ⓒ해녀의부엌
실패도, 불가능도 없다는 제주의 힘
‘해녀의 부엌’은 2020년 창업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지역 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사업에서 제주지역 최우수 로컬 크리에이터로 선정됐다. 되돌아보면 창업 초기부터 여러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과 다른 규정 때문에 꼭 필요한 지출은 제한되고, 불필요한 자금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는 아예 지원사업을 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다. 대신 투자 생태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벤처 캐피털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투자를 받으려면 질문지가 이만큼 와요. 재무제표로 자금의 흐름과 손익분기를 보고 기업을 평가하니까요, 그걸 받으면 내가 너무 예술에 빠져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스케일 업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죠.”
콘텐츠 사업은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가 없으면 예술이고. 예술이 빠지면 사업적 마케팅이 된다. 그 사이에서 얼마나 중간선을 잘 타느냐가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주)해녀의부엌 기업 가치는 수십억에 이른다.
내년에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예정이다. 싱가포르에 분점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김 대표는 ‘제가 일단 마음으로 확정한 일인 이상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문화 콘텐츠가 시장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 싶다.
“팀원들에게도 항상 말해요. 문제를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고요. 솔루션을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행동하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라고요.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반드시 방법이 나와요. 실패를 하더라도 사람을 얻든, 엄청난 깨달음을 얻든, 무조건 뭔가를 얻어요. ‘저스트 실패’란 없어요.”
인터뷰 끝에 사족처럼, 이렇게 단단한 의지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제주 문화의 힘’이라고 대답했다.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우듯, 해녀 공동체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애정이 높은 자존감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다 내어 주었던 제주의 자연도, 무한한 사랑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보태주었다. 덕분에 사람을 좋아하고, 불가능도 없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 곧 태어날 그녀의 아이도 이렇게 요망질 것이 분명하다. 엄마처럼, 제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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