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 사람을 통해 지역문화를 만납니다
구멍가게의 영업비밀, ‘곁’을 내주는 마음이었네
기록은 사회적 말 걸기다. 『구멍가게 이야기』(책과함께 2021)는 구멍가게 변천사를 다루지만, 결국 사람의 서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진심 어린 존중과 태도로 사라져가는 구멍가게 주인장들을 만나 그들의 농밀한 ‘사연’을 기록한 『구멍가게 이야기』는 감소의 시대 농촌·농업·농민에 대한 이해와 예의가 왜 필요하고, ‘동네’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마트에서 막걸리와 두부를 주로 산다
전남장성 아치실 가게 전경 ⓒ박혜진 작가 소장
구멍가게에 대한 어마어마한 추억이 있는 것 같다.
-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어요. 대신 못해본 것에 대한 로망, 특히 ‘불량식품’을 향한 못다 이룬 욕망이 큰 것 같아요. (웃음) 많은 분들이 구멍가게에 관한 책을 썼다는 이유로 제 출생 지역과 성장 배경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계시는데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전공도 조금 의외일 수 있는데 학부에서는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는 고전소설을 공부했습니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고 지금도 소설을 좋아하지만, 말로 하는 이야기 듣기를 훨씬 좋아합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풀어내는 살아온 이야기를 가장 좋아해요. 그분들의 삶에서 종종 내가 직면한 현실적인 고민들의 답을 얻는다는 사실도 고백합니다.
자주 애용하는 동네 구멍가게가 있는가. 주로 무슨 품목을 사는가.
- 도시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구멍가게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죠. 이런 환경에선 그나마 오래된 마트를 구멍가게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아파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코사마트’ 간판을 달고 있는 다소 허름한 가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로 막걸리와 두부를 삽니다. (웃음)
곡성 근촌리 점빵 마을 전경 ⓒ박혜진 작가 소장
책을 쓰게 된 내밀한 계기가 있었을 법하다.
- 구멍가게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순전히 문학 전공자의 시각에서였어요. 구멍가게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라져가는 공간이나 문화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죠. 고전소설 전공자이긴 하지만, 저는 학부 때부터 줄곧 구술(口述) 현장을 찾아다니며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술 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야기를 어떻게 채록하는지에 관한 일반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반론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구연자가 좀 더 마음 편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순 없을까. 그렇게 장소에 중점을 두고 구연자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친숙한 공간, 즉 구연자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법한 일상의 공간은 어디일까 생각한 끝에 구멍가게에 닿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처음부터 출판을 목적으로 구멍가게를 찾아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쪼개서 다녀오는 그 길 끝엔 언제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남았어요.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사연’이 많아요. 그렇게 곡절 많은 삶을 짊어지고도 헛된 욕심 하나 없고 사나운 마음도 없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구멍가게 어머님들은 가게와 함께해 온 당신들의 인생을 통해서 그러한 삶의 태도를 몸소 보여주셨어요. 그렇게 구멍가게 어머님들이 보여주신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치들, 그로 인해 제가 받았던 생생한 감동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곁’이 또 하나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의 ‘곁’이 또 하나 사라져가고 있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아프게 읽었다. 설명할 수 없는 비가(elegy)의 정조가 감지된다.
- 정확히 말하자면, ‘곁’은 ‘곁을 내주는 마음’일 거예요. 깊은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스레 마음을 주게 되잖아요. 현장 인터뷰를 통해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구멍가게가 바로 그런 공간이었어요. 마을공동체와 오랜 시간 같은 시공(時空)을 공유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내 것처럼 훤히 파악하고 살아왔기에 우리가 보기엔 얼핏 이해 안 되는 부분들까지 용인하는 측면이 많았죠. 생활에 대한 공유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것이 결국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되는 것 같아요. 이런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는 분들에게 구멍가게는 꼭 있어야 하는 ‘곁’이죠.
전남 구례 죽마리구판장 전경 @ 박혜진 작가 소장
본격적으로 출판작업을 하면서 십 년 전 찾아다녔던 가게들을 다시 돌아봤을 때 저마다의 사정으로 문 닫은 곳이 많았어요. 그 점이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는데 정확하게 그 감정이 가 닿는 지점을 짚어보니 가게 어머님들이었어요. 비록 이야기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그분들이 살아오신 녹록지 않은 삶, ‘곁’을 내주는 삶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무거웠죠. 한 시대의 삶의 유형이 그렇게 저무는 것이 씁쓸했고, 그 삶이 너무 아름답다고 체감했기에 아쉬웠습니다. 그런 제 감정이 은연중에 행간에 드러났을 수도 있고, 한편으론 ‘구멍가게’ 하면 내내 떠나지 않는 단어, ‘소멸’이 전제되어서가 아닐까요? 구멍가게가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사실 우리가 슬퍼하는 건 구멍가게 자체보다 그곳에서 경험한 ‘곁’의 정서가 사라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곁’을 만들고, ‘곁’을 차단하는 건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구멍가게, 혹은 구멍가게의 정서가 사라지는 게 아쉽다면 가장 가까운 동네 가게에 가서 라면 한 봉지 사 들고 라면값에 하나 더, 정겨운 안부 인사라도 얹어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영암군 모녀상회에서 볼수 있었던 가게 다양한 판매 용품 @ 박혜진 작가 소장
구멍가게는 지난 시절 우체국, 정류장, 은행, 사랑방 등 멀티플렉스 기능을 했다. 구멍가게가 사라진다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소매점으로 시작한 구멍가게가 마을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역할들을 하나둘 담당하며 ‘멀티플렉스적’ 공간으로 확장된 것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의도한 바가 아니었어요. 함께 살아가는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죠. 그렇게 기능과 의미가 확대된 구멍가게가 제 기능을 하나씩 잃고 축소되다가 사라져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게 운영자는 대개가 수십 년 그 자리를 지켜온 어르신들이에요. 기력이 다하는 한 가게에 나와 있겠다는 이분들을 이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래서 가게의 본질인 상업성은 대폭 축소되고, 그 외의 기능들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단적인 예로 장성의 <달성상회>를 들 수 있어요. 이 가게는 집 자체를 리모델링하면서 가게도 함께 정리했어요. ‘이제 그만, 문을 닫자’고 결심했다가도 어쩐지 아쉽고 마을 사람들의 바람도 있어서 두 평이나 됨직한 공간에서 상품 판매는 하지 않고, 마을 농군들 술참과 담배만 취급하고 있죠. 결국 멀티플렉스로서의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구멍가게에서의 삶에 공감하고 그것을 감당했던 세대(世代)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삶의 지향, 삶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변화는 어디에나 있어요. 다만 ‘속도’가 다를 뿐이죠. 구멍가게의 소멸은 그렇듯 사람 혹은 환경의 세대교체를 방증하는 가시적인 현상 중 하나겠죠.
동네 변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담양 오룡리 마을 전경 @ 박혜진 작가 소장
동네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동네의 변화를 대변하는 것들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내가 사는 동네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 무의식적으로 ‘우리 동네’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요, 내가 생각하는 동네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동네’의 동(洞)자는 물 수(氵) 변에 한가지 동(同)으로 ‘한 물을 먹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같은 우물을 이용할 정도의 거리 내에 거주하며, 그러한 물리적 환경을 공유함으로써 그들만의 인문적 요소들이 특징지어지는 건 당연하니까요. 물론 전통 사회의 관점으로 지금의 동네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바를 되짚어보면 제 나름대로 오늘날의 ‘동네’를 풀어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원마일 웨어(one-mile wear)’라는 용어가 자주 눈에 띄는데 집 근처 반경 1.6km 내에 나갈 때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입고 나갈 수 있는 편안한 차림을 말합니다. 우물의 현대 버전이라 해도 괜찮겠죠? (웃음) 제가 생각하는 ‘동네’의 물리적 범위가 얼추 그렇습니다. 부담 없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일상 생활권, 즉 먹고 마시고 장 보는 등 소소한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크지 않은 이 면적의 공간에 동네 사람들의 성향과 문화가 그대로 묻어나 있어요. ‘동네’는 결국 모여 사는 사람들의 성향과 삶의 방식, 그로 인한 인문 사회 환경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안 해광상회 앞 농촌 전경 @ 박혜진 작가 소장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농촌, 농업, 농민 소위 ‘3농(農)’을 소비하기만 하지, 이해와 예의가 없다. 농촌, 농업, 농민을 생각하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선생님의 질문 속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농촌, 농업, 농민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현실적인 좋은 정책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농촌, 농업, 농민을 생각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건 제 능력 밖입니다. 다만 그들의 현실에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요. 농촌은커녕 도시의 구멍가게에 관한 경험도 별로 없던 제가 시골 구멍가게를 그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백 퍼센트 현장답사 덕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지역민들을 통해 농촌의 일상도 조금은 알게 되었고요.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사장> 시즌1(2021)에 소개된 강원도 화천군 ‘원천상회’를 방문한 적 있다. 최근 차태현, 조인성이 출연한 시즌2도 종영되었다. 어떻게 보셨는가.
- 지난해 한창 출판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어서 저도 유심히 지켜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우선은 가게 규모에 놀랐어요.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자면 규모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 만물 잡화점 역할을 해온 구멍가게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니까요. 시골 가게의 상업적 역할에 초점을 둔 건 많이 아쉬웠어요. 주 무대인 가게들이 소규모 마을이 아닌 비교적 번화한 면(面) 소재지에 위치해서 인근의 여러 마을이 잠재고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작은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면 농촌, 혹은 산촌 지역의 가게가 마을의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좀 더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방송에서는 가게와 겸한 식당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요. 이 부분은 확실히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연출한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시골 가게’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인심 좋고 정 많은 따뜻한 이미지가 여지없이 부각된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이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농촌 가게의 실상에 좀 더 무게를 두었더라면 뻔히 예상되는 상투적인 시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의 슈퍼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을 끌어낸 건 또 시골 가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가게 주인과 손님들 간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라든가, 우연히 만난 동네 아이에게 음료수 하나 사주는 어른, 반가운 이웃의 밥값을 대신 내주는 넉넉함, 무엇보다도 일종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따뜻한 감동을 느끼고 흐뭇한 미소를 그리잖아요. 별것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이 보이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보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시골 가게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 같아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장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
주로 전남 지역 16개 시·군 지역 구멍가게를 답사했다. 왜 전남 지역이었는가. 주인장이 작고하고, 구멍가게가 없어진 곳도 상당하다.
-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공저자인 심 선생님(심우장)이 지금은 서울에 계시지만 당시 광주과기원 소속이셔서 광주에 거주하고 계셨고, 저 역시 그즈음 광주로 내려오게 되어 의기투합(?)한 것이죠. 각자 하는 일이 많아서 이 작업을 위해 전국을 두루 다니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구멍가게의 조건들로 미루어봤을 때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린 농촌 지역을 선택해야 했고, 저희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여야 해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답사 지역을 ‘전남’으로 한정해야 했습니다.
인상 깊은 가게를 콕 집어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웃음) 그래도 손꼽으라면 장성에 있는 <연산상회> 할머니를 소개하고 싶네요. 제가 뼛속부터 도시인이라 그런지 답사 초반에는 옹색하고 낡은 시골 가게에 적응이 잘 안됐어요. 이 가게 할머니를 계기로 구멍가게에 바짝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연산상회>는 답사 초기에 찾아낸 가게인데 전체 순서로 따지면 세 번째 방문한 곳이었습니다. 처음 이 가게를 찾았을 때 주인 할머니가 냉담한 얼굴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보셨어요. 작은 시골 동네에서는 외지인을 경계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오래된 가게 이야기를 들으러 다닌다고 했더니, 대뜸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터뜨리시는 겁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상황이죠? 저도 너무 놀랐어요. 그만큼 속 깊이 쌓아두신 사연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구멍가게 어머니들이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당신들 살아오신 이야기를 툭 터놓고 하셨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연산상회>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구멍가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살아오신 분들의 인생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장성 연산상회 전경 ⓒ박혜진 작가 소장
<연산상회> 할머니가 구멍가게 답사에 진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라면, 영암에 있는 <모녀상회> 어머니는 구멍가게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분이에요. <모녀상회>는 학교 앞에 자리한 문방구 가게입니다. 위치적 특성만큼 가게 어머니와 학생들 간의 관계가 아주 특별하고 긴밀하죠. 2012년 인터뷰 당시 너무도 건강하고 활력 넘치셨던 분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시 가게를 찾았을 때 이분이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분이 들려주신 곡절 많은 사연을 생각하며 마음이 참 아팠어요.
말씀만 들어도 안타깝다.
이후 <모녀상회> 어머니의 소식을 계기로 10년 전 찾아다녔던 구멍가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이미 절반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지만, 이 공간에서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구멍가게는 물론이고, 그곳을 지켜온 분들의 삶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착잡했어요. 그런 진정성과 사명감 같은 것이 더해져 본격적으로 출판작업에 들어서고부터는 구멍가게와 그곳에서의 삶에 완전히 몰입했었습니다.
고흥 호산리 가게 앞 전경 ⓒ박혜진 작가 소장
주인장들은 ‘외상’에 치이고, ‘진상손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가게를 계속한 이유가 ‘어쩔 수 없음’이라고 한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말에서 냉소주의는 읽히지 않는다.
- 일상의 힘이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묵직한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일상은 가장 힘이 세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합니다. 제가 돌아본 바에 의하면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 상당수가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요. 그 점이 가게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기반은 땅이죠. 지어 먹을 땅 한 평이 없어 소작을 하거나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가게와 연을 맺은 경우도 있고, 남편이 장애가 있거나 불성실한 가장이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님들도 있어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남겨진 아이들을 어떻게든 혼자서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로 살아오신 분들도 적지 않고요. 변변한 기반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로 가게만 한 게 없었다고들 이야기하죠. 수십 년간 가게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어쩔 수 없음’은 냉소적 시선과 태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일 거예요.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처럼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고 남들만큼 가르칠 수도 없었으니까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 그것만큼 큰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다름’을 인정하는 커뮤니티 커넥터
농/산/어촌의 구멍가게가 갖는 힘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 마을공동체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들과 일상을 공유해온 생활밀착형, 혹은 생활공감형 가게라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담양에 있는 <영천리구판장>은 그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가게였어요. 집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들고 들어와 제 손으로 막걸리를 내다 먹고, 열무김치 담을 물고추를 갈아달라고 오고, 가을걷이를 마치고 농협에 수매하는 날 가게가 행사장 역할을 하기도 하죠. 심지어 담배를 들일 때도 누가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 일주일에 얼마나 피우는지 종류와 물량을 계산해서 가져온다고 하니 놀랍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인아주머니가 마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일 거예요. 공과금을 대신 내주는 우체국 업무나 급한 돈을 융통해주는 은행, 만물트럭과 마을 사이에서 대행 구매를 하기도 하고, 마을을 들고나는 거점으로서의 정류장 휴게소 역할을 하는 등 생활의 편의를 보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처음 현장답사를 할 때도 그랬고, 이후 출판작업을 하면서 다시 가게를 찾았을 때도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다른 이유로 가게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런 모습에서 구멍가게가 마을의 구심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가게가 중심이 되어 소소한 마을의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마을공동체가 원활하게 굴러가고 ‘우리 마을’이라는 공동체 의식도 끈끈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구멍가게가 만들어낸 만남의 장소적 기능도 한몫합니다. 구멍가게는 마을 소식을 공유하는 이야기판이기도 하고, 다양한 영농정보를 교환하며 농사에 관해 저마다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한 토론을 펼치는 토론의 장이기도 합니다. 마을마다 주민들의 일상을 보조하는 기능적 측면들은 약화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소통의 장소로서의 기능만큼은 날이 갈수록 중요시되고 확대되는 것 같아요.
구멍가게가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 기술과 기기의 발달로 나날이 삶의 패턴이 바뀌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가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시대에도 어떻게든 모이려고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랜선 모임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사람살이의 본질은 만남과 공유라는 확신이 더해집니다. 농촌 지역 구멍가게의 가장 빛나는 면모는 바로 이 부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여럿이 모일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일 거예요. 실제로 구멍가게를 드나드는 마을 분들이 물건도 별로 없는 허름하고 작은 가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유입니다. 구멍가게가 이런 의미를 띤 데는 가게가 소수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누구라도 받아들이는, 즉 다수를 향해 열린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공간의 개방성을 담보하는 건 물론 운영자의 마인드죠. 가게 어머님들 상당수가 ‘내 가게’가 아니라 ‘마을 가게’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크고,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공간이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언제든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만남의 장소가 살아 있는 마을은 그래서 남달리 활기차고 주민들 간의 관계도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강진 랑동가게 앞 ⓒ박혜진 작가 소장
주민들의 삶에서 구멍가게가 발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마을 가게가 아니고서는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기꺼이 감당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단적인 예가 있어요. 강진, 장성, 보성, 나주 등 다양한 지역의 구멍가게에서 만난 단골손님들 중 상당수가 논이나 밭에서 일하던 차림새로 가게에 들어오곤 해요. 그중 강진 <랑동가게>의 경험은 잊을 수가 없어요. 한 아저씨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주황색 장화를 신은 채 가게로 들어오시는데, 신발이며 옷가지에서 흙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현장감이 넘쳤거든요. 물 찬 논에서 오전 일을 하다가 새참 드시러 가게에 들어오신 거예요. 생전 처음 보는 장면에 저는 무척 당황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당연한 듯 맞으시더라고요. 이 가게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했답니다. 농번기 품앗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구멍가게에서 고스란히 드러나요. 보성 <미력슈퍼>가 그랬습니다. 수시로 맨발의 흙투성이 손님들이 드나드는데, 일해주는 집 이름만 대고 막걸리를 드신답니다. 그러면 주인아주머니가 척하고 알아들으세요. ‘아, 아무개네 품앗이 일꾼이로구나’ 하고 말이죠. 마을 사람들에게 가게는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인 거죠.
구멍가게가 수행했던 ‘커뮤니티 커넥터’로서의 기능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방물 트럭행상이 각 지역을 돌고, ‘무인가게’도 등장한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외형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잖아요.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져도 ‘삶’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있듯이요. 가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게 운영의 주체가 개인과 공공을 넘나드는 현상을 봐도 외형은 끊임없이 바뀔지언정 물건을 팔고 사는 ‘가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자율 생성되기도 하지만, 의도적인 개입 하에 수동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해요. 마을구판장이 그랬죠.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소멸하는가, 그래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는 결국 사람에게 달린 문제 같아요. 달라지는 사람들의 요구가 그에 맞는 형태로의 변이를 만들죠. 돌아보면 언제나 그래왔듯이, 변화는 생성과 소멸로 교체되는 단선적 개념이 아닌 것 같아요.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본질은 그대로이되 외형을 달리하는 일종의 ‘변주’의 연속이라고 할까요. 이동식 만물트럭이나 무인가게도 그런 차원의 변이와 순환의 고리 안에서 등장한 형태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의 구멍가게와 달리 이들 가게는 상업적 기능만 있고 사람은 없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 점이 지금 현재, 지역의 내·외적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무인가게를 보고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라는 말이 생각났어요. 물론 거기에 사람의 ‘온기(溫氣)’는 점점 사라져 가지만 또 누가 알겠습니까. 기술, 기계 문명의 끝에서 ‘오래된 미래’는 인간이라며 인간으로의 회귀를 부르짖을지…. (웃음)
지역회생, ‘삶의 퀄리티’에 주목하자
구멍가게이야기 일러스트 ⓒ책과함께
지역소멸 논의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역회생 차원에서 구멍가게를 생각한다면 어떤 방안이 있겠는가.
- 도시재생이나 마을재생이 환경 정비 사업을 비롯해 재개발, 재건축 등 물리적 환경 조성을 우선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많이 접합니다.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지역에서는 인구 유입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 시 주택을 제공한다거나 출산 시 장려금을 내세우는 등 근시안적인 경제 지원책을 앞다투어 내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해당 정책들은 많은 부분 그다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공(空)’약만으로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새로 짓고 인구를 늘리는 것이 쇠락하는 지역을 되살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최근에는 지역 자체, 즉 현지인의 ‘삶의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추세인 듯합니다. 지역의 명운을 객관적인 수치로 판단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람, 혹은 삶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할까요. 구멍가게를 돌아보면서 제가 느낀 가장 소중한 가치는 ‘나 중심’의 획일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의 자세였어요. 도시재생이나 마을재생, 혹은 지역회생은 범위가 훨씬 크고 전문적인 차원의 문제이지만, 정책을 만들고 구현하는 데 있어서 이런 ‘구멍가게적 사고’, 즉 개별 지역의 실정을 유연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바람직한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지역 맞춤형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회생을 위한 실제적 방안으로서의 구멍가게를 생각해보라면, 가게의 존재는 역시 장점으로 작용하겠죠. 지근거리에서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편의성은 생활의 기본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지역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가이죠.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전까지 있어 온 방식으로의 가게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지역회생의 차원에서 구멍가게를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하려면 역시 개별 마을의 실정에 부합하는 현실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물트럭에 의존하거나 무인가게를 생각해낸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수익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형태를 생각한다면 다시 구판장 개념의 마을공동가게가 등장하지 않을까도 싶네요. 물론 이때의 마을공동가게는 이전 시대의 구판장과 또 다른 모습이겠죠. 소매점의 기능은 무인가게로, 친목을 위한 모임은 마을회관으로 가는 식으로…. 어쩐지 무거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초장기 단순했던 가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웃음)
박혜진 선생과의 대화를 마치며, 충북 옥천 출신의 시인 송진권의 「느티나무슈퍼」라는 시가 떠올랐다. 특히 “막걸리를 마시며 ‘겨’로 끝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지요”라는 마지막 시행을 조금은 더 섬세하게 이해한 것 같았다. 농촌·농업·농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장으로’ 들어가야 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퀄리티’에 주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박혜진 선생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지역 문제는 도시의 정의(定義)가 아니라 지역 스스로 ‘지역의 정의(定義)’를 내리고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로컬 지향의 시대, 지역의 새로운 ‘리듬’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구멍가게 이야기』를 통해 다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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