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
죄다 풍문으로 들었다. 요즘 부산 영도가 들썩인다거나 거제 장승포에 청년들이 몰린다거나…. 이런 이야기 속엔 반드시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빵집, 책방, 카페, 숙소, 상점들이 등장한다. 로컬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공주의 모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나 속초 소호거리의 시초가 된 게스트하우스 ‘소호 259’처럼 매력적인 거처가 낙점되면 이미 영혼의 반쯤은 기차에 실려 있다. 기대와 설렘은 질문이 된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그런 공간을 운영하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 왜 ‘하필’ 거기에?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기로 했다’며 출사표를 던진 윤찬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과 심병철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6개월간 5개 지역을 돌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비로컬과 함께 기획을 맡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2021년 세종도서 선정)에 이어 1년 만에 내놓은 두툼한 로컬 탐방서에는 귀농, 귀어 등 귀촌을 쏙 뺀 로컬 도시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메타버스’가 한때 많은 기업에서 상사의 ‘결제 사인’을 이끌어내는 매직 키워드였던 것처럼, ‘로컬’은 시름시름한 지자체를 회생시켜 주리라는 기대를 담은 ‘핵인싸’ 작전명이다. 많은 예산과 전문 인력이 ‘로컬 살리기’에 투입되어 지역 소멸을 막으려 애쓰고 있고, 실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시·도·군에서 전개되는 중이다.
▲공주 사람들조차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는 제민천 너머로 문화 거점을 자처하는 게스트하우스, 빵집, 서점, 카페 등이 늘어나고 있는 봉황동과 반죽동 ▲상권 침체로 인적이 드물어진 마을에 혁신 플랫폼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군산 개복동과 월명동 ▲일, 여가, 주거라는 큰 틀에서 사회문제와 도시 재생을 고민하는 부산 영도 ▲청년과 상인들이 유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속초 동명동과 교동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공동체에 스며들고 있는 거제 장승포 ▲로컬 크리에이터가 변화의 주축이 되고 있는 충북 청주, 충주, 괴산까지…. 대개는 ‘유별나다’ 소리를 삼켜가며 쇠락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셔터 문을 올리는 희귀한 꽃들이다.
이들에겐 자신들의 향기를 더 잘 맡도록 진화된 ‘꿀벌’이 필요하다. 소통으로 연결하고, 소문으로 확장하고, 기록으로 아카이빙하는 로컬 생태계의 꿀벌들이 바로 이 책의 필자들이다.
로컬의 토양이 다 다르니, 피어난 꽃들도 다르다. 로컬이 당면한 도시문제와 사회문제라는 것이 큰 틀에서는 인구 감소, 소외, 소멸로 통칭될지 모르지만, 세세하게는 다른 상황과 경험에 처해 있다. 어떤 곳은 동네 전체를 두루 살피면서 기획을 추진할 주민 조직이 마땅치 않은가 하면, 다른 지역에는 ‘잘나가는 놈’이 있어 좋긴 한데, 그들만 밀어줄 수 없는 공정성의 문제가 있다. 더 크게는 동네 상권에서 경쟁자를 만들지 않는 공감대도 중요하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도시에 따라 창업지원에 더 힘을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 조성과 사람의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가는 곳도 있다. 로컬의 토양을 바꾸는 농부들의 지향과 양상은 다 다른데도, 부딪히는 막막함은 비슷한 데가 있다.
벤처 캐피털이든 임팩트 투자자든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돈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핵심 사업 모델을 다듬고 확장하라고 투자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로컬 팀들은 공간 마련 비용에만 목을 매고 있는 점이 아쉬워요. _ 공주 ‘퍼즐랩’ 권오상 대표
무상으로 공간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지원이 끊기면 다시 떠나고 빈 공간만 남았죠. _ LH토지주택연구원 김륜희 수석연구원
행정이 잘하는 일은 행정이 하되, 민간의 창의적 발상과 시도가 필요한 일은 민간에게 과감히 맡기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_ 군산시청 정권우 도시재생과
로컬의 역동은 늘 예측하기 어려운 나비효과의 연속이다. 원하는 대로만 진행되는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늘 좋은 일과 아쉬운 일이 제로섬 게임으로 수렴되는가 하다가도, 어쨌든 로컬에 계속 남아 보겠다는 사람 하나가 생기면, 이 모든 일들이 해볼 만한 일로 승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로컬’ 실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사람으로 북적이는 로컬의 일상이다. 돌아온(찾아온) 사람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이 늘 가장 큰 과제다.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밖에 할 수 없는 도전과 성공, 시행착오들은, 이렇게 짧은 단어로 말하기엔 너무나도 긴 사연이고, 사람이다. 저자들은 책을 쓰기 위해 ‘로컬’이라는 단어에 공명하는 70명의 사람을 만났다. 창업가, 로컬 크리에이터, 중앙과 지방 정부의 공무원, 지방 의원, 연구자, 중간지원기관 활동가, 문화예술인, 임팩트 투자사와 사회기관 대표, 대기업 CSR 담당자 등 그 스펙트럼이 광활하다. 저자는 이들을 ‘로컬에 남아 꽃을 피우려는 이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출신과 걸어온 길, 좌절과 꿈을 소상히 적고, 그들 사이의 관계망까지 놓는 일은 매우 고단한 기록 작업이다.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로 로컬 행(行)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꼭 맞는 스승과 도반을 찾아낼 확률이 크다. 스스로 ‘진짜 혼을 갈아 넣었다(군산 주식회사 ‘지방’ 조권능 대표)’고 할 만큼 치열했던 과정들을 아낌없이 들려줄 사람들의 명부다. 그들이 건넬 뾰족하고 따듯한 충고들은 아마도 이런 내용일 것이다.
저는 어디에서 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가 중요하지요. _ 공주 ‘루치아의 뜰’ 석미경 대표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가진 것을 로컬에서 잘 풀어내면 반드시 사람들이 좋아해 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_ 공주 빵집 ‘오초오초’ 이승준
누군가는 이 지역에서 자라면서 받았던 혜택,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지역의 문화와 정신, 이런 것들을 지역에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_부산 ‘알티비피 얼라이언스’ 김철우 대표
로컬을 위한 질문, 뭣이 중헌디?로컬은 오늘도 위태하다. 2020년은 한국이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 감소한 해다. 안 그래도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울, 인천과 경기도에 사는 나라인데, 로컬 인구의 감소가 수도권보다 더 빠르게 진행 중이다. 공동 저자인 윤찬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은 ‘수도권으로 몰린 인구를 로컬로 흩어놓지 않으면 아무리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당근을 내밀어 봐야 아무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에 옮겼다. 책에서 밝힌 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경기도를 떠나 전라북도 어디쯤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책을 두 권 쓰면서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만한 로컬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가며 어깨 너머로 배운 것들을 밑천으로 삼을 생각이다(362p).’
물론 그는 혼자가 아니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로 채워진 세종시보다 소도시이면서 오래된 역사와 흔적과 감성이 남아 있는 공주가 더 끌렸다”는 공주 곡물집(集) 부부(천재박, 김현정)처럼 ‘끌림’의 힘에 이끌려 온 선배들이 지역마다 포진해 있다. “앞으로는 부동산을 가진 쪽이 아니라 콘텐츠를 가진 쪽이 더 큰 일을 가지고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벤처캐피탈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권혁태 대표의 말은 또 얼마나 경제적이고 희망적인가.
예산과 지원 사이, 사업과 프로젝트 사이,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 주민과 상인 사이, 이주민과 현지인 사이,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 정부와 민간 사이에 길이 놓이면 다양한 교집합이 생긴다. ‘청년농부가 지구 환경 변화를 현장의 에피소드로 담은 영상 콘텐츠로 쌓아가고, 예술가집단이 지역소멸에 맞서 균형 발전을 이루려는 노력을 공연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달동네 고령화 문제와 빈집 문제를 해결하고자 숙박업을 시작한 커피숍도 있다(337p).’ 자연 생태계에서도, 로컬 생태계에서도 ‘연결’은 너무나 중요하다. ‘좋은 생태계란, 그 생태계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체계다(p316).’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만나는 에필로그에는 충격적인 인용이 등장한다. “지방은 스스로 실천 가능한 지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본받을 모델은 없다. 결국 지방의 독자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마쓰나가 게이코 오사카시립대학 교수).” 하지만 함께 타는 배엔 늘 선장이 있어야 하고, 선장에게는 등대가 필요하다. 공주, 속초, 군산 시장이 이 책에 추천사를 썼다. ‘정책을 만들거나 그것을 집행하는 이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바람이 가 닿았다.
곁가지이지만, 로컬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뜨는 명소이자 ‘사연 맛집’을 모아놓은 맵이자 가이드북이다. 사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똑똑하고 개성 넘치는 소비자’는 로컬의 중요한 서포터즈들이다.
요즘 MZ세대들 가운데 충주 특산품을 사과라고 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제 충주를 찾는 이들은 충주에서 주조된 로컬 술을 사 간다. 작은 알자스의 ‘레돔’, 댄싱사이더의 ‘요세로제’, 블루웨일브루하우스의 ‘로컬 크래프트 비어’와 ‘토끼소주’를 사야 힙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347p).
(봉준호 감독이 말했듯이) 오스카도 로컬이고, 서울도 로컬이다. 로컬에 핀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은 꿀벌이고 나비다. 모두 로컬 생태계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