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
<옥천신문>은 주민들이 가장 무섭다
무궁화호를 타고 대전역을 지나 옥천역에 닿았다. KTX가 서지 않는 옥천. 대전광역시보다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고, 이내 편견임을 깨달았다. 대전광역시의 면적이 539.7㎢, 옥천군의 면적은 537.12㎢이다. 땅의 규모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옥천 밖 사람이 옥천을 ‘만지기’ 위한 시작을, 이렇게 무지함으로 비롯된 편견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이미 옥천은 서로 오랫동안 ‘만지고’ 있었다.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며 언론의 순기능을 실천하는 <옥천신문>이 체제와 주민 사이에 서서 살아 있는 지역문화를 이끌고 있다.
구불구불한 금강 상류의 강줄기가 독특한 자태로 감싸고 있는 옥천에는 존경받는 인물들이 있다. 금강에서 영감을 받아 ‘향수’(1927)를 쓴 정지용 시인과 <한겨레> 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청암 송건호 선생이다. 옥천은 두 사람의 유산을 통해 글과 언론의 힘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옥천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들이 자신들의 고장 소식을 다루지 않는 것을 두고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1988년 송건호 선생이 <한겨레> 신문을 창간한 방식처럼, 주민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군민주’를 택하고 222명의 힘을 모아 1989년 <옥천신문>의 첫 호를 탄생시킨다.
옥천신문은 주간지이다. 매주 특종이자 단독 기사를 싣는다. 옥천신문 편집부에는 취재 기자 9명을 포함해 17명이 근무하고 있다. 국내 지역 신문사들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이다. 옥천신문을 펼치면 별개의 신문이 두 가지나 들어 있다. 청소년과 노인, 장애인 등 소수자 기자단의 힘으로 만드는 <옥수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상점과 제품을 홍보하는 생활정보지로 지난해 창간된 <오크>다. 매주 세 가지로 두툼하게 구성되는 옥천신문의 발행부수는 3,500부이다. 2만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옥천에서 옥천신문 구독자는 20%를 육박한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근래의 세태를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비중이다. 또 옥천신문은 유료다. 1부에 2,500원, 한 달 구독 비용이 1만원이다. 옥천신문은 지역 광고 수익보다 신문 구독 수익이 더 높다. 옥천 사람들에게 옥천신문은 기꺼이 1만원을 내고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옥천 밖에도 구독자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방송 작가들도 있다. 옥천신문이 그들의 창작에 영감이 되고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신문을 열면 옥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이 보물처럼 펼쳐지니까.
2002년 옥천신문에 기자로 입사한 황민호 대표는 저널리즘의 정신을 살려 지역과 삶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매일 편집부로 걸려오는 제보 전화는 십여 건이 넘는다. 사건과 사고, 비리 고발과 같은 제보는 물론 생활 민원,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생활 소식들이 편집부로 끊임없이 들어온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앞에 인도가 없어서 걷기가 힘들다”, “휠체어가 다니는 길이 중간에 끊어져 있다”, “우리 밭에서 올해 고추 농사가 잘 되었다”, “황금 미꾸라지를 봤다” 등이다. 신문에서 지역 민원을 기사로 다루면 가능한 한 해결된다. 옥천읍에 최신 개봉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향수시네마’가 들어선 것도 옥천신문을 통한 청소년들의 민원에서 시작되었다. 대전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지 않아도 읍내에서 영화 관람 비용 6,000원을 내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금요일 새벽이면 신문사 앞에 옥천군청 사람들이 신문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살피기 위해서다. 옥천신문은 저널리즘의 ‘솔루션’ 기능을 제대로 실천한다.
황민호 대표 |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중요해요. 또 해마다 옥천군에 6천억 원 가까이 되는 예산이 어떻게 집행되고 쓰이는지 주민들은 알 권리가 있어요. 보통 시의원과 구의원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옥천에서는 옥천신문에서 그들의 활동을 보여줘요. 체계와 주민과의 관계 사이에 언론이 있어야 하고, 언론은 주민 편에 서서 체계를 끌어당기는 것이지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재현이에요. 광장에서 잠깐 촛불을 들 때만, 대통령 선거를 할 때만 민주주의가 아니죠.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해요.
지역 주민들이 만들고 지역과 함께 성장한 옥천신문은 주민들이 가장 무섭다. 군수를 비롯한 체제는 옥천신문에 귀 기울인다. 언론도 체제처럼 권력이라서 잘못할 수 있다. 노동조합, 독자위원회, 신문윤리위원회가 옥천신문의 공정성을 검증한다.
황민호 대표 | 언론이 ‘창’이 아닌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창은 내가 안에 있고 밖을 바라봐요. 대상화하는 것이지요. 거울은 나 스스로를 봐요. 내 삶과 내 터를 바라봐요. 이 세상에 특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특별해요. 보통 언론에 나온 사람들은 저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현하면 모두가 유명하지요.
옥천신문 편집부는 옥천 사람들의 생애사를 쓴다. 70대 이상이면 누구나 ‘은빛 생애사’의 취재원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역사는 박물관이고 도서관이지 않는가.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지역이 돼 버린다. 있었어도 없는 것이 된다. 역사의 산 증인인 그들의 삶을 글로 남기고,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족자로 걸어 애도하는 이들이 고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최근 옥천읍에 단 하나였던 표구사를 운영해온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2019년 표구사의 문을 닫은 지 3년 만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가족들은 옥천신문에 고인을 기리는 광고도 냈다. 우리가 아는 언론들은 물론 대도시에서의 삶은, 관심이 온통 유명한 사람들의 삶에 기대어 있는 데 반해 옥천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평범한 모두의 삶이 소중하다.
옥천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옥천신문사를 중심으로 인큐베이팅된 다양한 사업들의 플랫폼이 펼쳐진다. 2017년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문화 콘텐츠 사업 ‘고래실’이 탄생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지역문화 창작공간 ‘둠벙’이 신문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작은 웅덩이라는 뜻을 가진 충청도 방언 ‘둠벙’에서는 공연이나 영화 상영회와 각종 소모임이 열린다. 또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음식을 내는 ‘옥이네밥상’이 있고, ‘옥천저널리즘스쿨(OCS)’이 근방에 있다. OCS에서는 풀뿌리 언론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핵심들을 가르친다. 옥천 출신 기자가 한 명도 없던 옥천신문에 최근 옥천 출신의 막내 기자가 이곳을 통해 입사했다.
옥천신문은 그의 탄생에 이어 33년간 차근차근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을 토대로 또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낸다. 지난해 12월 21일 FM 옥천 공동체라디오 OBN을 개국했다. FM의 주파수를 104.9MHz에 맞추면 옥천 사람들이 만드는 옥천 밀착형 방송이 나온다. 풀뿌리 방송을 만드는 OBN이라는 뜻의 ‘풀빵 굽는 오븐’은 라디오뿐만 아니라 TV로도 옥천 방송을 송출한다. KT IPTV 사용자들은 채널 789에서 옥천 방송을 볼 수 있다.
황민호 대표 | 라디오 개국을 추진하게 된 거죠. TV, 라디오, 신문, 잡지, 생활정보지 등 이 다섯 가지는 어느 지역에나 있어야 할 미디어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2021년 6월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설립했어요.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의미가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자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의 뜻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공동체 라디오를 기획하게 되었죠. 사실 시작은 무모했어요.
정말로 라디오 개국은 쉽지 않았다.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의 양도 엄청났지만, 104.MHz 전파사용 허가를 받은 후에도 추진해야 할 일은 산처럼 높았다. 또 건물에 송신탑을 세우고, 공간 리모델링과 갖춰야 하는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33년 전 옥천신문의 창간 때처럼 기부금을 모았다. 지역에서 약 1억 3천만 원이 모였다. 절반은 리모델링에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장비를 구입하는데 썼다. OBN 1층에 걸린 기부자의 벽에는 방송국 개국에 힘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옥천 사람들이 만든다. 33년간 옥천신문의 힘을 보아온 그들은 라디오 만들기에도 적극적이다. 직접 DJ로 나서고, 콘텐츠를 구성한다. 80대의 DJ는 옥천읍 내에서 음악 신청을 받는다. 청소년들도 빠질 수 없다. 진행은 물론 기획자, 작가, 엔지니어링 등 라디오 방송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인생초짜틴에이저’, ‘청라반하나’, ‘청년살이’ 등 프로그램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는 이유는 그들의 파릇한 기지가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황민호 대표 | 과일가게나 미장원을 들여다보면 종편 TV 방송을 하루 종일 틀어놔요. 그런데 그 방송은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서울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그런 분들이 옥천 사람들이 만들고 옥천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거예요.
방송은 읍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옥천 내 운행하는 버스들도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옥천FM 앱을 통해 청취할 수 있다. 시작은 무모했지만, 이제 막 첫발을 뗀 황민호 대표는 앞으로 방송국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옥천에 사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일자리들이 주어질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산 사람에게 지방은 지방일 뿐이다. 언론이 억울하게 씌운 지방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에 쉽게 젖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에 희망이 있을까?’라는 생각은 옥천신문과 변화하는 지역문화를 들여다 본 후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몰랐던 것이 아니다. 거대해진 중앙 도시의 위력과 언론에 휩쓸려 모른 척했던 것이다.
모른 척 해온 대상은 엄밀히 말하자면 ‘지방’이 아니다. 삶에는,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지역’에 대한 담론이 빠져 있다. 거창하게, 담론이 아니어도 좋다. 일상에서 내가 사는 지역과 이웃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는가? 나와 이웃, 우리의 이야기는 늘 뒷전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의 문제로만 떠안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대도시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아파트 가격처럼 잡히지도 않는 허상들만 좇다가 빠르게 지친다.
옥천신문은 옥천 사람들의 무구한 시간과 노력을 끌어안으며 그들만의 이야기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최근 5만 명이 무너진 옥천의 인구수만 가지고 옥천을 평가할 수 없다. 5만 명이라고 해도 과연 만지고 체감할 수 있는 숫자일까? 각기 다른 법과 체계를 갖춘 26개의 주로 이뤄진 스위스에는 인구수가 5천 명 남짓한 지역도 있다. 정치권에서 ‘메가시티’를 주창하고 있지만, 체제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끌어안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규모 때문일까?
다시 대전광역시와 옥천군의 땅 크기에서부터 편견을 가졌던 내 자신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과연 내가 태어난 지역을 얼마나 살피고 있는가. 과연 나는 서울을 살필 수나 있을까? 황민호 대표의 말대로 옥천신문이라는 언론은 창이 아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