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심코 한 말이 차별일 수도 있었어
희망제작소 이음팀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프로젝트, 어디 사람

글 | 최갑수 작가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말을 쓴다.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말을 쓴다.

“넌 경상도 사람이면서 사투리를 별로 안 쓰네.” 이 말이 차별이 될 줄 몰랐다. 희망제작소 이음팀은 우리가 ‘차이’인 줄 알고 있었던 무의식적인 언어 사용에 차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번 프로젝트 <어디 사람?>을 통해 보여준다.

차이가 아니라 차별

지방 사람들은 고향에 가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와, 너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네.” 서울에서 경상도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경상도 사람 치곤 사투리 많이 안 쓰시네요.” 충청도 사람들이 종종 듣는 말은 “충청도 사람들은 말을 느리게 해서 답답할 줄 알았는데 너는 아니구나” 하는 말이다. 강원도 사람들 앞에는 으레 ‘감자’라는 단어가 붙는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차별하고, 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차별하고, 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하게 사용하는 이 말들이 사실은 차별 또는 혐오 표현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희망제작소 이음팀은 이런 지역차별언어 사용을 바로잡기 위해 전국 45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차별 언어나 표현에 대한 경험, 인식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참여자의 대다수인 92%가 지역차별언어를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는 언어로 지역을 차별한다
희망제작소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희망제작소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희망제작소는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시민의 후원을 통해 공익 연구를 하는 민간독립연구소이다. 15년 전 설립되어, 시민참여, 현장 중심의 연구, 지속가능한 미래, 공공부문의 혁신을 위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시민이 직접 연구자가 되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한 온갖문제연구 프로젝트,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일자리 정책 연구 같은 연구사업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희망제작소 이음팀이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프로젝트, 어디 사람?>은 지역 소멸에 대한 대응 연구의 일환으로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지방혐오를 털어내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진행됐다.

프로젝트는 지역 풀뿌리 단체에서 오래 활동했던 활동가들이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출발했다. 내부에서도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 프로젝트가 오랜 기간 표류하기도 했지만, 성차별 언어, 인종차별 언어 등 차별언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지역 소멸 등 지역 불균형 문제가 대두하면서 캠페인을 진행해도 충분할 정도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희망제작소이음팀은 차별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해 연구를 진행했다.

희망제작소이음팀은 차별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지역차별언어’란 과연 무엇일까. ‘지역차별’은 듣자마자 이해가 바로 되지만 ‘지역차별언어’는 쉽게 이해가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지역을 차별하는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기존 사례에서 혐오표현, 차별표현 등 비슷하게 또는 다르게 사용된 표현이 많은데, 이번 프로젝트에선 모두 포함하여 차별 언어라고 불렀습니다.”

지역 언어 사용에서 ‘차이’와 ‘차별’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도 생겨난다. “저희들도 조금 어렵고 애매한 부분이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차별의 지점인 줄도 몰랐는데, 듣고 보니까 이게 차별이라고 느껴진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화자와 청자의 입장에 따라 농담 또는 친근감의 표현이 될 수도 있고, 차별 언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죠.” 이음팀의 설명에 따르면,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특성을 차이라고 한다면, 합당한 이유 없이 차이를 근거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차별이라 할 수 있다.

“차별은 연구자마다 정의가 다양한데, 지역차별 언어 프로젝트에서 사용하기에 딱 맞는 표현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차별이 결국 차이를 기반으로 암묵적 편가르기가 되어 상대편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거나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라 하면, 지역차별은 지역을 기반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역에 대한 우위가 존재하는가? 서울과 지역은 가능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분명히 말하긴 어렵습니다. 강원도가 충청도를 차별할 수 있는가, 충청도가 경상도를 차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결국 당사자의 목소리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기존 차별 언어 연구에서도 지역차별언어만 독립적으로 다룬 사례는 없었고,또 지역차별언어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기에 자료도, 연구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시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듣는 사람이 차별이라 느끼면 차별
언어를 통한 지역적 편가르기가 굳어져 나중에 편견이 되고 나아가 누군가를 쉽게 비하하는 수단이 된다.

언어를 통한 지역적 편가르기가 굳어져 나중에 편견이 되고 나아가 누군가를 쉽게 비하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지역언어차별은 지역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출신 지역이 노출된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 사람들은 공식적인 곳에서는 사투리 사용을 자제해달라거나, 사투리를 고쳤으면 좋겠다는 지적을 듣는 경우가 많다. 지역 방송에서는 아나운서나 DJ들이 표준말을 사용하지만 초대손님이나 방청객, 인터뷰하는 시민들은 사투리를 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배역이 조폭이나 노동자 등이다. 우스꽝스럽거나 문제적 인물로 그려지지 진지한 배역을 소화하지는 않는다.

“차별이 결국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태도, 행동, 불공정한 대우로 드러나는 것인데, 비하의 의도 없이도 재미로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차별언어로 많이 느끼시더라구요. 언어를 통한 이런 지역적 편가르기가 굳어져 나중에 편견이 되고, 고정관념이 되었을 때, 누군가를 쉽게 비하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늘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갑자기 드러난다.  사투리가 혐오로 이어지게 된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서울중심주의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표준어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사투리가 주변부의 언어, 틀린 표준어로 인식이 된 것도 한 원인이다. 그리고 결국 50%가 넘는 인구가 서울 수도권에 있고 모든 자본과 미디어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이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차별을 느낄 수는 있지만,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객관성을 담기 힘들고, 이를 명문화하기는 더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별이 나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나도 모르게 차별을 했거나, 묵인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이번 작업은 그래서 지역을 차별하는 다양한 언어를 수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객관성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작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는 것이죠.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중요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차별을 하지않기 위한출발점이라고 이음팀은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차별을 하지않기 위한출발점이라고 이음팀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역차별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음팀은 “지역을 좀 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지역의 고유한 특징을 잘 알 때, 언어도 변화할 것입니다. 또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 역시 모든 종류의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음팀은 그동안 진행한 시민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모아 <어디사람 워크북>(2021)을 발간했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싣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지역을 시골로 퉁치기보다는 지역 이름을 부르거나, 고향, 본가라는 단어를 사용해보자는 것이 그 예다.
“언어를 바꾼다고 지역차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에만 집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태도나 마음의 문제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이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일 것이며, 결국 사회를 담는 그릇인 언어가 이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음팀은 이번 연구의 결과물을 워크북으로 펴냈다.

이음팀은 이번 연구의 결과물을 워크북으로 펴냈다.

이번 프로젝트가 워크북으로 마무리된 데에는 언어의 특성상 한 번에 바뀌거나, 대안어의 사용이 해결 방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하여 지역차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부분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지역차별이 나오게 된 사회적 분위기, 사회구조, 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언어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를 통해 내린 이음팀의 결론이다.

최갑수
작가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오랫동안 ‘인디펜던트 워커’로 일해 온 경험과 노하우를 뉴스레터 <얼론 앤 어라운드>에 녹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