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글 | 서진영 작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왼쪽부터)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만난 《비마이너》김도현 대표 ⓒ서진영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거리로 나선 활동가들 ⓒ김도현
(왼쪽부터)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만난 《비마이너》김도현 대표 ⓒ서진영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거리로 나선 활동가들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만난 《비마이너》김도현 대표 ⓒ서진영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거리로 나선 활동가들 ⓒ김도현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 누구도 스스로 장애인이 되겠노라 선택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무런 준비 없이 장애라는 상태에 놓인다. 동시에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열등한 쪽으로 구분된다. 포털 검색창에 ‘장애인’을 입력하면 자동완성 기능에 따라 연관성 높은 문자 목록들이 나타나는데 차별, 시위, 채용, 복지, 인권, 혜택과 같은 단어들이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장애인은 결핍된 존재, 수혜의 대상으로 이미지가 확장되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날 장애인이 직면한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개인의 삶은 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장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장애 문제는 ‘안타깝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김도현 선생을 찾아갔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 부설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그리고 장애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바라보고 그 현장을 기록해 알리는 언론사 《비마이너》의 발행인으로 진보적 장애인 운동에 힘을 쏟고 있는 그는 비장애인이다. 무엇이 그를 장애인 운동에 ‘연대’하는 삶을 살게 했을까?

(왼쪽부터) 대학로에 위치한 ‘대항로’ 건물. 노들장애인야학을 비롯하여 장애인 차별에 대항하는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서진영 노들장애인야학 벽에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도된 기사가 한가득 스크랩되어 있다 ⓒ서진영
(왼쪽부터) 대학로에 위치한 ‘대항로’ 건물. 노들장애인야학을 비롯하여 장애인 차별에 대항하는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서진영 노들장애인야학 벽에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도된 기사가 한가득 스크랩되어 있다 ⓒ서진영

대학로에 위치한 ‘대항로’ 건물. 노들장애인야학을 비롯하여 장애인 차별에 대항하는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서진영
노들장애인야학 벽에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도된 기사가 한가득 스크랩되어 있다 ⓒ서진영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한 바람 - 차별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

Q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요?
“지금 생각하면 나이브(naive) 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조금 더 의미 있고 보람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했죠.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요.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한 1996년 바로 그해에 평택 에바다복지회 비리 사태가 터져요. 장애 아동의 의문사, 강제 노역, 폭행, 그리고 공금 횡령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심각했는데 사건 초기에 책임자 한두 명이 처벌되는 수준에서 무마되고 정작 많은 피해를 입은 장애 아동과 선생님들은 쫓겨나 따로 공동체를 꾸려 싸움을 지속하게 됐어요. 그 싸움에 어떻게 하면 힘을 보탤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한다, 또는 힘을 나누는 정도로 생각을 했지만, 점차 그런 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느끼게 됐어요. 당시 장애인 운동에 연대할 수 있는 단체로는 노들장애인야학이 유일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됐고 졸업하면서 야학 상근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을 하게 되었어요.”

김도현 선생은 자신이 비장애인이지만 장애 문제에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일고 있는 여성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여성문제에서 1차적으로 실마리를 쥐고 있는 건 당연히 여성들이다. 실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되고, 스스로 변화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를 바꿔 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여성문제가 정말로 해결되려면 남성들이 바뀌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남성 중심의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장애인들이 겪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비장애인인 그 역시나 장애 문제에 무관한 존재가 아니며, 연결되어 있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고하고자 거리로 나선 김도현 대표와 활동가들 ⓒ김도현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참고도서들로 빼곡했다 ⓒ서진영
(왼쪽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고하고자 거리로 나선 김도현 대표와 활동가들 ⓒ김도현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참고도서들로 빼곡했다 ⓒ서진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고하고자 거리로 나선 김도현 대표와 활동가들 ⓒ김도현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참고도서들로 빼곡했다 ⓒ서진영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中에서

사람마다 지향하는 세계가 있다. 김도현 선생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꿈꾼다고 했다. 누가? 누구든! 장애인 역시나. 더 넓게는 소수자라고 해서 이 소박하고 평범한 바람이 어려워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되물었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비장애인 활동가를 ‘내부적 연대자’라고도 하는데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운동을 한다는 측면에서 이제는 스스로를 운동의 주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배제되었던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생긴 일

Q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중적인, 그리고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이 시작된 건 1980년대 말이에요. 6월 민주항쟁 전후로 한국사회에 큰 변화의 기운들이 일어날 때 장애인 운동도 태동하게 되는데 199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대부분의 조직들이 와해가 되죠. 그렇게 1세대 장애인 운동이 무너진 가운데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요, 이 사고가 2세대 운동의 계기가 됩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이야기하는 현장과 때마침 국내에 소개된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라는 담론이 만나 중증 장애인 중심의 운동이 다시 시작됐어요.”

이후 사단법인과 같은 형태로 제도권 안에 안착한 단체도 있고, 여전히 거리에서 현장 운동을 이어가는 연대들도 있다. 김도현 선생이 진보적 장애인 운동이라 이야기하는 흐름은 후자에 해당한다. 특별한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안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그 과정에서 참여하는 대중이 늘어나 점차 안정된 연대를 꾸리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2001년 이동권 보장 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해 현재 전국에 300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동 지원, 주거 지원, 활동보조는 물론 상담, 교육, 정보 제공 등 장애인의 자립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주고받는다. 현장 운동에도 참여한다.

(왼쪽부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교실마다 한껏 고조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서진영 대항로 건물 4층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들다방 ⓒ서진영
(왼쪽부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교실마다 한껏 고조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서진영 대항로 건물 4층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들다방 ⓒ서진영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교실마다 한껏 고조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서진영
대항로 건물 4층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들다방 ⓒ서진영

“야학이나 장애인 부모 단체도 지역마다 있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선 야학이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인데 장애인 야학은 2000년대 후반 훨씬 많이 생겨났죠. 학령기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개별 단위의 자립센터나 야학을 뭉치게 하고 지원하는 협의회도 이러한 운동 속에서 조직되었고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된 목소리

Q 장애인 운동을 하는 연대 또는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기본 원칙은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효율성의 논리, 경쟁의 논리, 이윤의 논리와 같은 것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과 전반적인 사회 체계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자기의 권리를 실현해 나간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주도하기가 쉽다. 우리 사회는 어쨌든 비장애인 중심 사회였고, 비장애인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활동하기 용이한 측면이 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위험이 있어요. 거기서 오는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히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같은 기관에서는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할 때 절반 이상을 장애인으로 하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될 경향성들을 방지하고자 그런 원칙을 두는 거죠.”

한편, 장애인 운동이 그간 요구해왔던 것들은 무엇을 요구할지 골똘히 생각하고 치열한 논의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사회에 평범한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장애인들에게는 미치지 못했던 것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중교통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 교육은 권리이기 전에 의무이니까. 당연한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결핍과 차별, 필요들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었다.

(왼쪽부터) 노들장애인야학 입구에는 고인이 된 활동가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서진영 함께 땀 흘리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작은 갤러리로 꾸며놓은 대항로 건물 계단 ⓒ서진영
(왼쪽부터) 노들장애인야학 입구에는 고인이 된 활동가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서진영 함께 땀 흘리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작은 갤러리로 꾸며놓은 대항로 건물 계단 ⓒ서진영

노들장애인야학 입구에는 고인이 된 활동가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서진영
함께 땀 흘리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작은 갤러리로 꾸며놓은 대항로 건물 계단 ⓒ서진영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일, 느리더라도 끝내 실현되기를

Q 운동을 지속하려면 상당한 물적·인적 자원이 필요할 텐데요?
“대부분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영리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니까 최소한의 자원을 확보해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을 같이 해결해 나가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는 ‘평등한 밥상’이라고 1년에 한 번씩 후원 행사를 열어 보완하기도 합니다. 바자회도 열고, 주점도 운영하죠. 이곳 야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 분류돼 정규 학교처럼 급식 지원이 안 되거든요. 후원 행사에서 모은 기금으로 학생들과 활동가들의 식비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곳 활동가들은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 나이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활동비를 받아요. 서로서로 책임지는 구조인데 늘 빡빡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족한 재정은 더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연스레 활동가들의 업무 부담이 늘고, 그러다 보면 어떤 가치 지향이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지치기 마련. 세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데 큰일이 아닌가.

“저는 2015년까지 장애인이동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실무자로 활동했어요. 여전히 현장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런 실천들이 오래 가려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과 좀 더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악하면 당장에 급한 것부터 하게 되잖아요. 그런 고민 속에서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 발행이라든지, 책을 쓴다든지 하는 활동들이 덧붙었어요. 저희가 지향하는 세계로 나아가고자 지속하는 활동들이 공통의 감각 속에서 공유될 수 있어야 느리더라도 끝내 실현이 될 테니까요.”

김도현 선생은 TV 드라마나 영화에 장애인이 출연한다고 하면 아직까지는 아주 특별한 캐릭터로 등장을 하는데 실은 ‘지나가는 사람 3’과 같은 보조출연으로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해질 거라고 했다.

(왼쪽부터)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하며 절박하게 답해야 했던 질문과 고민들을 엮어낸 <장애학의 도전> ⓒ서진영 현장에서 연구, 저술, 강의 등으로 김도현 대표의 역할은 더 확장되고 있다. ⓒ김도현
(왼쪽부터)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하며 절박하게 답해야 했던 질문과 고민들을 엮어낸 <장애학의 도전> ⓒ서진영 현장에서 연구, 저술, 강의 등으로 김도현 대표의 역할은 더 확장되고 있다. ⓒ김도현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하며 절박하게 답해야 했던 질문과 고민들을 엮어낸 <장애학의 도전> ⓒ서진영
현장에서 연구, 저술, 강의 등으로 김도현 대표의 역할은 더 확장되고 있다. ⓒ김도현

장애인 운동이라고 하면, 그 안에서 실천이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거리 시위 형태의 투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나 야학과 같은 장애인 단체가 있는지 찾아보고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길을 오가다가 ‘아, 이건 장애인들이 좀 불편하겠다’ 싶은 것들을 관찰해 민원을 넣어주는 것, 또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것도 모두 실천이다. 안타깝게도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쉬이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변화는 몸을 움직여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고, 그 언젠가 내가 겪을지도 모를 일이니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장애를 무기로 삼아선 안 될 일이다. 다만 김도현 선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장애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때문에 비장애인 역시나 장애 문제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이제 함께할 차례다.

서진영
작가
글을 쓰거나 다듬는 일을 한다. 줄곧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진행하는 전통문화·문화유산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 결과물을 글로 풀어냈다. 쓴 책으로는 《또 올게요, 오래가게》, 《하루에 백 년을 걷다》,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등이 있다. 주변을 살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는 일이 세상살이 안목을 높인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