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글 |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학창 시절 어느 날 아침, 교문에 커다랗게 걸린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경축! 00학교 운동부 00대회에서 입상.’

시골 학교에서는 대단한 일이었고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회가 거듭할수록 현수막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뀌었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학교의 이름이 조금 더 빛나고, 약간의 자부심이 상승할 수는 있지만, 정작 학교 구성원 개개인의 체력이 좋아지거나, 운동 실력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널리 이름을 알리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안의 구성원이 얼마나 행복한지이다. 지금 한국사회도 비슷하다. 무역은 몇십 개월째 흑자고,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선진국이며, 세계 10위 안의 국가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유명해져 가고 영향력은 커진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에서 맴돈다. 사회통합지수는 거의 20년째 꼴등 수준이다. 우리가 진짜 원했던 건 나와 모두의 행복 아니었던가? 내가 속한 공동체와 조직은 더욱 부유해지고 힘도 세진다는데, 그 안에 있는 나는 그것만큼 행복하지 않다면,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이 ‘등대’ 역할 하려면

한국사회는 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압축적 경제성장, 독재 등 짧은 시간에 많은 커다란 역경을 겪었다.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똑같은 제품을 빨리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었다. 군부독재와 체제경쟁 속에서 다르다는 것은 곧 생존을 위협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런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은 내가 주류사회와 얼마나 똑같은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내가 가진 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됐다.

그런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민주화의 시대, 창의성과 다양성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올바르고 당연한 변화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의 다수와 얼마나 똑같은지가 최고의 생존 기술이었던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다양성의 시대는 매우 낯설고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국가 사회적으로도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이 꼭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시대다. 문화다양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부의 중장기 계획 속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설정되었다. 세계적인 기업이나 대학들도 관련 조직과 연간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 다양성의 시대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한국사회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동질성과 단일성이 최고의 가치라고 배웠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성 또한 나와의 합의와 선행과정 없이 뚝 떨어진 기준처럼 당황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 제1차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 기본계획 주요내용 ⓒ문화체육관광부

▲ 제1차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 기본계획 주요내용 ⓒ문화체육관광부

얼마 전 정부는 제1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사회 문화다양성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4년간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확산시켜 나갈지에 대한 비전과 방향이 담겨 있다. 기본계획은 문화다양성을 일상에서 맞이하는 시민에게 문화다양성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실현할지를 설명해야 한다. 더욱이 문화다양성은 등장 이후 그 개념이 꾸준히 변화해왔다. 문화를 한 국가나 한 민족의 같은 문화 단위로 설명했던 때도 있었으며, 예술 생산품의 보호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또한 단순하게 다양한 예술장르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본계획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오류를 재빨리 수정할 수 있도록 일종의 ‘등대’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본계획에 문화다양성 실천 과정에 필요한 시민을 향한 동의 과정이 담겨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현장의 의문과 오류에 적절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첫 번째 기본계획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현실을 모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계획을 작성하신 분들께 애정 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크게 세 가지 관점을 가지고 살펴봤다.

사람을 향해 있는가?
▲ 고향은 달라도 여기살면 부천시민 포스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고향은 달라도 여기살면 부천시민 포스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여러 번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한국사회 전체에 바로 알리는 것이다. 매우 적절하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무리 어떤 고결한 가치라도 사람을 향해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아쉬운 점은 첫 번째 계획인 만큼, 왜 문화다양성을 확산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책 배경으로, 한국사회가 압축적 경제성장과 체제경쟁 그리고 독재가 부른 단일 이데올로기 등으로 훼손된 다양성에 대해 일말의 반성을 언급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본계획에서는 정책 배경의 첫 번째로 저출생 고령화 사회를 언급하며 이주민 유입의 정당성과 필요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점은 자칫 사람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낸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이 생존에 꼭 필요한 이유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유로 경쟁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일종의 함정에 빠트리게 한다.

당장의 국익이나 공동체에 혜택을 바라볼 수 없는 난민에는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저출생의 문제에서 미혼 남녀나 자녀가 없는 가구는 어떨까? 더 이상 산업에 이바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다수자의 기준과 산업의 관점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다양성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로 경쟁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결국 경쟁력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줄을 세우고,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부메랑이 된다. 문화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소수성의 집합체인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 배경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나의 변화를 이야기하는가?

이 점은 비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계획과 비전들이 사회변화를 말하며 교육과 인식개선을 앞에 내세우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주로 당신의 변화 그리고 시민의 변화를 우선 이야기한다. 이번 계획에서는 인식변화와 관련하여, 기관 운영에 문화다양성 운영 반영 확대나, 조례제정 관련 위원회 설치 추진 등 여러 과제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문화 분야 공공기관 종사자 문화다양성 교육 의무화’나, ‘문화다양성 관련 보조사업 수행 시 보조사업자 교육 의무화’는 긍정적인 추진 과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화다양성 인식개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이러한 정책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사람의 인식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시민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획일성과 동일성을 강조하며, 시민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는 시민인식 저해 환경을 어떻게 바꿀 지부터 이야기되어야 한다. 또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변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주류가 소수를 향해 요구하는 또 다른 강요일 수 있다.

현장의 의문에 답하는가?

2010년경 한국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이 본격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때부터, 현장은 사실 매우 우왕좌왕했다. 현장에서 가진 의문은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왜 추가로 다양성 사업이라는 것을 해야 하나?’, ‘다문화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인가?’, ‘소외계층 문화나눔사업과 무엇이 다른가?’,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장려하자는 것인가?’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현장의 의문에 얼마나 답을 하고 있을까? 한국사회 모두의 공존, 그동안 억압되어 있었던 소수의 정체성이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 기회와 소통 창구,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역어와 수어(手語) 등 언어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관행적으로 문제의식 없이 시행하던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 공모 규칙 개선’ 등의 시행과제들은 눈에 띄게 매우 반가운 대목이다. 위에 언급했던 많은 의문들에 실천과제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보여주는 면이 있다.

반면 ‘취약계층 문화권 보장’, ‘통합문화이용권 및 스포츠강좌이용권 지원 확대’, 그리고 ‘소외계층 문화권’으로 ‘문화시설 접근권’, 등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세부 과제로 삼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오히려 현장의 의문과 오해를 더하게 만든다. 소외계층 문화나눔사업이나 문화복지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시행과제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일부 내용에서는 단순히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활동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후 실천의 과정에서 바로 잡았으면 한다.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적자생존은 가장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생과 번영을 담보하는 것은, 서로를 얼마나 보듬고 살필 수 있느냐이다. 몇천 대의 CCTV를 비추어, 물리적인 안전을 잠시라도 확보할 순 있어도, 다양한 소수성의 집합체인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이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모두가 가지는 다양한 가치관과 소수성의 표현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관계와 생존 그리고 발전을 말할 수 있다. 문화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곳에서 공존도 평등도 평화도 그리고 행복도 기대할 수 없다. 행복한 공존을 향한 과정에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이 좋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이주민 인권운동을 시작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자칭 이주민 인권운동과 문화계 사이에 필요한 연결고리를 자처했으나, 두드러진 활약은 없다. 현재는 지역과 마을에서 어떻게 하면,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통해 평화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제도와 시스템, 공간과 환경, 인식 변화와 교육, 그리고 지역공동체 등 오지랖 넓게 활동하고 있다. 주로 문화다양성, 인종차별, 인권경영, 혐오표현, 지역공동체 활동 및 관련 교육과 연수 활동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