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 가을호_짚다
짚다 : 펄떡이는 로컬 현장의 맥을 짚습니다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청춘들
콘텐츠 기획 단체 ‘시고르청춘’을 결성, 전북 부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춘들을 만나러 서울에서 부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첫 질문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고르청춘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는 무난한 질문보다 한층 뾰족한 질문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어째서 군(郡) 단위의 부안에서 일을 벌일 생각을 했나?’ 더 솔직하게는 ‘근래 로컬에서 기회를 찾는 청년들이 늘고, 스타로 발돋움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대세는 여전히 인서울인 시대가 아닌가? 그대들은 어찌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군에서 읍내 생활을 선택했나? 독특한 이력이 더 경쟁력 있다던데… 혹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는 아닌가?’ 하고.
속마음을 떠보려는 의도도 아니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도 아니다. 읍내에 들어선 순간 부안에서 전에 없던 일을 꾀하고 있다는 시고르청춘 청년들의 생각과 생활이 진짜로 궁금해졌다. “시작부터 날카로운 질문인데요?”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모였냐면요’ ‘우리가 뭘 하고 있느냐면요’ ‘그래서 앞으로 뭘 하고 싶으냐면요’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고르청춘 윤나연, 옥성태 두 청춘에게 ‘자기다운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되레 한 수 배우고 돌아왔다. (이하,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은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으로 칭한다.)
시골에서 보물을 찾아 세상에 공유하는 콘텐츠 기획 단체 ‘시고르청춘’ 박현준, 옥성태, 오현영, 윤나연 (왼쪽부터) ⓒ시고르청춘
We are Countryside Tresure Hunter.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시골 보물 사냥꾼’이라고 칭한다. ⓒ서진영
우연이든 운명이든 바로 여기 부안에서 만나게 된 청춘들
시고르청춘이 운영하는 시고르잡화점에서 나연과 성태 두 사람을 만났다. 시고르잡화점은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이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부안굿즈샵'이라는 해시태그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은 이날 함께 자리하지 못한 구성원들까지 총 네 장의 명함을 꺼내 첫인사를 건넸다.
“시고르청춘은 시골에서 보물을 찾아 저희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콘텐츠 기획 단체예요. 총괄 기획 윤나연, 총괄 운영 옥성태, 영상 박현준, 디자인 오현영, 지금은 이렇게 네 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 친구가 더 있는데 지금 군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군 생활 중인 구성원이 있다니, 진정 청춘이다. 실제 나이도 96~98년생으로 20대 중반, 사회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 청년들이다. 이들이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 선후배 사이는 아니다. 나연은 2020년 1월 부모님의 이주 결정에 따라 군산에서, 성태는 취업을 계기로 2021년 3월 전주에서 부안으로 이주했다. 현준, 현영 두 사람은 부안 토박이다.
나연은 부모님의 결정으로 강제 귀촌을 하게 됐는데 이 일이 자신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부모님이 이주한 시기는 마침 그가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영국에서 보내고 막 귀국했을 때였다. 그는 부안으로 이주하기 전 대도시에서 영어 강사로도 일해보고, 국제교류센터에서 행사 기획 일도 경험해봤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나연) 제 이상과 달리 어떤 가이드라인 안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는 일도 많았죠. 그런 경험을 거듭하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을 품고 있던 차에 부모님을 따라 부안에 오게 됐죠. 부안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인프라나 사회적 기반이 부족한 것은 맞아요. 그런데 저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가이드라인이 많지 않아 제 스스로 개척해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안이 좋아졌고,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부안군농업기술센터에서 기간제근로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현준 님과 현영 님을 동료로 만나게 된 거죠.
시고르청춘에서 총괄운영을 맡고 있는 옥성태, 총괄기획을 담당하는 윤나연 ⓒ서진영
시고르청춘의 마스코트 ‘참피’ 캐릭터를 활용한 소개 엽서와 명함. ⓒ서진영
참피 캐릭터에 구성원들의 개성을 반영해 명함을 디자인했다. ⓒ서진영
부안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 시고르청춘 결성
처음부터 시고르청춘이라 명명하고 일을 도모한 것은 아니다. 나연과 현준이 먼저 사업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때 일이 잘 진행됐다면 시고르청춘이 아니라 ‘부안 뽕잎 닭가슴살’을 출시한 청년 사업가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연) 제 나름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사업화해야 당위성도 얻고, 지속 가능성의 기반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템을 정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는데 논의 끝에 부안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뽕잎 닭가슴살’로 아이템을 잡았죠. 어렵사리 아이템을 정했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잖아요. 뽕잎을 구하러 지역 농장을 찾아갔다가 저희의 시선이 확 달라졌어요. 그때 농장주께서 해주신 조언이 결정적이었죠. 지역을 먼저 알아야 이런 일들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당장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콘텐츠 기획을 먼저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지역에서 무언가 해보려 한 의도는 좋았지만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다. 2021년 6월 나연과 현영이 부안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상 크루를 결성했다.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운호마을에 방문했다가 오히려 산과 들, 호수와 바다를 모두 품고 있는 마을 풍경에 반해 마을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보자 한 것이 첫 시도였다. 5~9분 분량으로 운호마을 어르신들과의 만남, 운호마을 농산물로 만드는 비건 스콘, 운호마을 산책 코스까지 총 3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현준이 합류하게 됐고, 2021년 11월에는 성태까지 시고르청춘에 합류했다.
성태) 저는 도시재생 분야에 관심이 있어 그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부안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지원하게 됐어요. 부안이 어딘지도 잘 몰랐지만 제가 살던 전주에서 1시간 거리니까 지원해보자 했는데 합격이 된 거예요. 처음에는 1년, 길어도 2년 정도 커리어를 쌓는다는 생각이었어요. 다시 전주로 아니면 수도권 쪽으로 갈 계획이었고요. 그런 마음가짐이었는데 직장에서 이런저런 교육을 받게 되잖아요. 그중에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있었어요. 그 교육에서 나연 님을 비롯해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거죠.
성태는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받기 전까지 부안에 또래의 청년들이 있는 줄 몰랐단다. 타지에서 직장 때문에 이주해 온 성태 입장에서는 맞춤한 준거(準據)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부안 곳곳을 매력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는 이들의 활동이 참 재미있었다. 함께 어울려 지내던 어느 날 “같이 할래?”라는 제안을 받은 성태는 “콜!”을 외쳤다.
성태) 처음 부안에 올 때와는 달리 새삼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제가 시골, 시골의 감성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친구들과 함께 시골 시장에 가서 어머님들과 수다를 떨고, 자연 속에서 거닐고 하는 일들이 어쩜 그렇게 재미있는지. 대도시에서 지낼 때보다 시골, 자연 속에 있을 때 제 숨통이 트인다는 것도 명확히 느낄 수 있었죠.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맞겠구나,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 이곳에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고르청춘 덕분에 부안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죠.
영상 콘텐츠 제작은 2022년에도 계속됐다. 2022년에는 시골의 의식주를 트렌디하게 표현해보자고 해서 ‘시고르 룩북’ ‘시고르 식탁’ ‘시골의 여행’ ‘시고르 플리(플레이리스트)’ 네 가지 콘셉트로 총 15개의 영상을 제작했다. 나연은 이 작업을 통해 시고르청춘 구성원들 사이에 공동체성이 보다 탄탄해졌다고 했다. (시고르청춘이 제작한 영상 콘텐츠는 시고르청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고르청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계정
시고르청춘이 제작한 영상 콘텐츠 썸네일 일부. ⓒ시고르청춘
시고르청춘의 영상에는 구성원들이 직접 등장해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차분히 보여준다. ⓒ시고르청춘
굿즈 제작, 문화기획으로 활동 영역 확대
현재 나연과 성태는 ‘남부안 청자로 네트워크 협의체’에서 만든 지역 여행사 ‘부아느로’의 직원으로, 현준은 김제복지관 소속 사회복지사로, 현영은 직접 만든 ‘보이보이해피보이’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며 시고르청춘 활동을 이어간다.
나연) 청년의 시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찾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모여서 시고르청춘을 결성했을 때 각자 소속이나 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들을 해보면서 그중에서 재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구체화할 수 있을 때 법인을 만들자고 약속을 했어요. 시고르청춘의 공동체성이 탄탄해지기 시작한 것을 2022년으로 본다면 저희는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실험적인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직장에서 쌓고 있는 전문성과 시고르청춘의 활동이 서로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남부안 청자로 네트워크 협의체’의 경우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협의체다. 부안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데 채석강이나 내소사 등 유명한 명소들 외에 체험농장처럼 지역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곳들을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조직됐다. 시고르청춘보다 앞서 지역을 새로이 브랜딩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부아느로라는 여행사도 설립하게 됐다. 나연과 성태는 부아느로 활동을 통해 기획과 실행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한편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가 더욱 확장되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처럼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은 ‘따로 또 같이’ 일하며 활동 영역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시작은 영상 콘텐츠 제작이었지만 점점 굿즈 제작, 그리고 문화기획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됐다. 굿즈를 제작하게 된 계기도 처음부터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단체복을 만들어 입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옷 어디서 샀어요?” 묻는 사람은 물론이고 판매 요청이 들어오더란다. 오호라. 그렇다면 부안을 브랜딩할 수 있는 굿즈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시고르청춘이 처음 선보인 굿즈는 ‘줄포 제비’를 모티브로 한 티셔츠다. 줄포 제비가 지역을 대표하는 천연기념물 같은 걸까? 아니다. 우연히 줄포시장 화장실 건물에 둥지를 튼 제비들을 보게 됐다. 어미 제비를 기다리며 지저귀는 아기 제비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고는 한 주 뒤 줄포에 갈 일이 있어 다시 아기 제비들을 찾았는데 제비는 물론 둥지도 오간 데 없이 사라져 있더란다. 그때 둥지를 잃고 떠나간 제비들과 부안을 떠나게 되는 청년 세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했다. 줄포 제비 티셔츠는 그저 예쁘게 만든 기념품이 아니다. 부안의 청년들이 왜 떠나게 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지역사회 내에서 화두를 끌어내고 동시에 부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이 여기에 있다고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시고르청춘 시그니처 캐릭터인 ‘참피’가 탄생하고, 부안을 키워드로 한 굿즈들이 연이어 출시됐다. 이것만으로도 실행력에 놀라게 되는데 시고르청춘은 부안군 13개 읍·면의 개성을 담은 굿즈들을 차례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부안읍, 줄포면, 보안면, 변산면 굿즈가 출시된 상태다.
시고르청춘 기획회의는 언제나 즐겁고도 치열하다. ⓒ시고르청춘
참피는 시고르청춘 시그니처 캐릭터이자 대표 굿즈 상품이다. ⓒ서진영
시고르청춘이 제작한 굿즈들은 지역 플리마켓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시고르청춘
부안이라고 하면 “부산이요?” 또는 “무안이요?”라고 되묻는 사람이 많은 데서 고안한 ‘부산 무안 아닙니다’ 굿즈. ⓒ서진영
구심점이 되는 공간으로 ‘시고르잡화점’ 운영
굿즈는 지역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플리마켓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다. 굿즈 종류도 늘고, 현장 판매는 물론 구매 요청도 들어오면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시고르청춘은 빈 점포를 활용해 청년 창업 기반을 제공하는 부안군도시재생지원센터 ‘챌린지숍'사업에 도전했다. 점포 리모델링에 최대 1천만 원, 임대료는 60% 이내로 연간 8백만 원까지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밖에 공간 구성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구성원들의 몫이었다.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구성원들이 더 구슬땀을 흘리는 수밖에. 공간 설계부터 페인트칠에 이르기까지 공간 구석구석 구성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리하여 2023년 3월 24일 시고르청춘은 ‘시고르잡화점’을 개업했다.
성태) 시고르청춘 시그니처 캐릭터 참피가 참새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요, 참새가 시골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모아두듯 저희 시고르청춘도 부안과 시골에서 모은 보물들을 차곡차곡 모아 세상과 공유하려 해요. 시고르잡화점이 표면적으로는 굿즈숍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부안, 더 넓게는 시골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공간인 것이죠.
나연) 확실히 이 공간이 기획과 활동의 구심점이 되고 있어요. 베이스캠프가 생긴 거죠. 더 많은 분들에게 저희의 활동을 알릴 수도 있고요. 버스킹이라든지 플리마켓과 같이 모객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근처에 학교들이 있거든요. 초·중·고등학생들도 드나드는데 그 친구들에게 부안을 애정하는 언니오빠들이 있다는 걸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진짜 뿌듯한 일이죠. 자주 오는 친구들은 ‘이런 것도 만들어주세요’ 하고 진지하게 제안도 하고요.
시고르잡화점을 통해 시고르청춘이 지역 청소년들과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그 어떤 성과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부안에서 지내는 동안 ‘지역소멸’이라는 말을 실감할 때가 적지 않다는 나연과 성태 역시 지역소멸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그와 함께 적어도 부안에서는 시고르청춘이 그 일을 시도하고 있고, 그에 대한 반응도 하나둘 나타나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공간이 생겨 좋은 점도 많지만 고민거리도 있다. 그간에는 부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역에 대해 알아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시고르잡화점이 마련되면서 공간 운영에 발이 묶이는 경향이 있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과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지만 행여 지역사회 현장성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긴장감이 든다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비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일 뿐.
빈 점포를 구한 후에 구상한 시고르잡화점 초기 스케치. ⓒ시고르청춘
노란색 벤치와 참피 캐릭터가 돋보이는 시고르잡화점 전경 ⓒ서진영
설계, 디자인, 인테리어 공사까지 시고르잡화점 구석구석 청춘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시고르청춘
각종 굿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는 시고르잡화점 내부. ⓒ서진영
시골에 더 많은 청춘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
다시 한번 대놓고 물어봤다. 로컬에서 활동하는 청춘들이 많아지면 시고르청춘 입장에서는 경쟁자들이 더 늘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고르청춘은 위기의식을 느낄지, 아니면 더 반가울지 말이다.
성태) 정말 정말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시골’, ‘지방’, ‘로컬’이라고 하면 은연중에 부정적인 느낌, 특히 젊은 사람이 지역에서 산다고 하면 어딘가 실패한 인생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던 게 사실이잖아요. 저는 시골에서 자기만의 기회를 찾는 청년들의 모습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유행했으면 좋겠어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서울, 수도권으로 가는 게 뻔한 삶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진짜 어느 정도 예상이 되잖아요. 예측이 안 되는 시골에서 자기만의 콘텐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멋있는 거라고 인정받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더 많은 청년들이 로컬로 와야죠.
나연) 저도 더 많은 청년들이 저희의 경쟁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은 ‘컨트리사이드 트레져 헌터(Countryside treasure hunter)’ 그러니까 ‘시골 보물 사냥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 다른 지역에서 ‘보물 사냥’이라는 워딩을 쓰는 곳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가 좀 더 차별점을 가져야 하겠다고요. 어느 순간 업그레이드 지점을 찾고 있는 저희를 발견하게 됐어요. 시장에 플레이어들이 많아지는 것을 실감하면서 그게 또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또래 청년 집단에게 경쟁의식을 느끼거나 선점하려는 노력보다 차별점을 찾고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이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한편 이런 고민은 없을까? 지금이야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지만 언제든 다른 꿈이 생길지도 모른다. 혹은 구성원들 간에 지향점이 달라지는 순간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서로 약속한 것은 없는지.
나연) 저는 시고르잡화점의 계약이 끝나는 2025년 2월을 기준으로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을 잡고 있어요. 제 전공이 정치외교인데 시골이라는 주제로 외교 활동을 전개해보면 어떨까 하는 꿈이 자라고 있거든요. 시고르청춘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했는데 격하게 공감해줄 멤버는 군대에 가 있고 나머지 멤버들 반응은…. 마냥 쉬거나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는 시골을 탐험하고 교류하는 프로젝트이니까 더 열심히 설득하려고요.
성태) 우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되는 순간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긍정적인 이별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고르청춘을 함께하는 동안 각자 역량이 높아져서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 되었을 때 말이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기쁘게 분리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각자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협업할 수 있는 하나의 기업협동조합, 그룹의 형태를 새로이 갖출 수도 있을 테고요.
시고르청춘 구성원들은 왜 그들이 ‘시골청년’도 아니고 ‘부안청춘’도 아니고 ‘시고르청춘’이라고 이름 지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시골 똥개를 사랑스럽게 일컫는 ‘시고르자브종’의 뉘앙스처럼 시골을 영감이 가득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재정의하고 싶었다. 또한 청년이라 하면 법적, 행정적 기준이 있다. 그러나 청춘이라고 하면 나이의 범주를 벗어나게 된다. 시고르청춘이라는 이름부터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작명이라니…, 앞으로 이 청춘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까, 점점 기대가 커져간다.
시고르잡화점이라는 베이스캠프가 생겨 보다 든든해졌다고 말하는 윤나연 총괄 기획 담당. ⓒ서진영
좋은 친구들 덕에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옥성태 총괄 운영 담당은 더 많은 청춘들이 지역에서 함께하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한다. ⓒ서진영
시고르잡화점 개업과 함께 발행한 포스터 형식의 소식지에 시고르청춘의 비전과 목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진영
다양한 방식의 워크숍을 통해 비전과 미션을 구체화하는 시고르청춘 구성원들. ⓒ시고르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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