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컬에서 태어나 로컬에서 죽는다. 그래서 누군가 ‘세계화’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진의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로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오늘을 성실하게 살 뿐이다. 불쑥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질문은 어렵고 또 당혹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지혜를 빌려오자면, 책 속에 답이 있다. 라다크의 미래와 춘천의 현재,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평행 이론으로 얽히는 마법의 키워드는 ‘로컬’이다. 로컬이라고 썼지만, 미래라고 읽으시면 좋겠다.
Ⓒ온다프레스
당신도 로컬 씨입니다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나의 거주지 찾기 프로젝트, 춘천 편』
서진영(지은이), 온다프레스 2023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자신을 ‘30대 청년 1인 가구는 지역에서 자기 거주지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삶에서 ‘로컬’을 찾아내기 위한, 어느 도시의 실험과 모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0대 청년 1인 가구는 서진영 작가이고 어느 도시란 춘천이다. 그렇다면 30대도, 1인 가구도, 춘천에 살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당첨이다! 그런 당신이 바로 이 책의 독자다. 사실 제목에서 호명하는 ‘로컬 씨’는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며, ‘어디’는 바로 지금 당신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호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로컬이 뭐지?’로 달려간다.
그 대답은 로컬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일단은 ‘춘천 편’이다. 저자가 6개월 동안 발견하고 만나고 써 내려간 춘천의 길고양이, 맡겨놓은카페, 닭갈비, 새벽시장, 담작은도서관, 호수, 연탄 이야기 등에 대응하는 것은 춘천의 주거, 교통, 교육, 복지, 자연, 인구 구성 등이다. ‘잘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을 기준으로 던져지는 질문은 ‘효자동의 길고양이 마을은 주민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맡겨놓은카페와 담작은도서관에서 춘천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나?’ 등이다.
"연탄은행이 지금까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민들의 힘 덕분이거든요.(연탄은행, 밥상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정해창 목사, 221쪽)" 과연 춘천이 살만한 도시인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이 도시의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똑같은 질문과 단서를 자신이 속한 로컬에 적용하고 또 찾아보고 싶어졌다면, 이제부터 또 한 명의 ‘로컬 씨’가 탄생한 것이다. 각자가 속한 로컬은 다르지만, 바라는 삶과 문화의 지향은 누구에게라도 다를 리 없다.
춘천문화재단과 온다프레스가 이끈 출판의 과정도 되새김직하다. 책은 춘천 문화도시조성사업의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그 접근 방식과 문체는 놀랍게도 개인적이다. 하지만 의도를 두지 않은 이 접근이 로컬의 실체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춘천의 밝은 면만을 비추지 않았지만, 취재 대상을 선정하는 것부터 본문의 내용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덕분에 필자는 ‘외국인 노동자 무료 시술’이라는 거리의 현수막만 보고 어느 시술원에 즉흥적으로 들어가 다문화사회를 품는 선한 마음을 취재할 수 있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작가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남해의봄날
‘오래된 미래’가 다시 묻는 미래
『로컬의 미래-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지은이), 최요한(옮긴이), 남해의봄날(2018)
2018년 한국에서 처음 발간된 이 책은『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기억하는 당신에게 20여 년 후 도착한 대화의 초대장이다. 1992년에 초판이 발간되어 한국(2007년)을 포함한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발간된 이 책은 여러 장르의 책으로, 기업명과 간판으로 활용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흥했으나, 그러는 사이에 지구는? 망했다! 아니 망해가는 중이다. 그만큼 위기라는 것이다.
초대장의 발신자는 라다크로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40년 동안 전 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있는 로컬 경제 운동의 선구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다. 1부에서 세계화에 대한 암울한 진실을 먼저 설명하고, 2부에서는 헬레나와의 문답으로 로컬화(localization)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3부에서는 우리가 가야 할 로컬의 미래를 제시하고, 마지막 4부에서 더 듣고 싶은 질의들을 헬레나로부터 듣는 형식이다.
질문은 거시적이지만 대답은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세계화는 흔히 ‘국제 협력, 상호 의존, 지구 공동체’라는 뜻으로 오용되고, 지역화는 흔히 ‘고립주의, 보호주의, 무역 폐지’로 오해된다. 소비 중심의 글로벌 경제가, 국제 무역과 금융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의 문화 다양성을 해치며, 인간 개개인의 행복을 깨뜨리는 사례 중 극히 일부만이 이 책에 수록될 수 있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도 차이가 크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세계화의 폐해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를 거듭해서 세계화는 끊임없는 ‘바닥을 향한 경주’라며 경종을 울린다.
오래전 라다크의 이야기에서 서구 중심의 개발과 성장에 비판적인 눈을 가졌던 그 시절의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계화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수혜자라고 착각하는 당신, 라다크의 변화는 안타깝지만, 여전히 새벽배송과 글로벌 SPA 브랜드의 옷이 편리한 당신은 다름 아닌 나다. 서울 종로에 매장을 둔 물품이 경기도, 충청도를 돌고 돌아 불과 5.2km 거리의 내 집으로 배송되는 일이 어쩌자고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이 편리한 일상의 이면에 불필요한 노동과 에너지 소비가 있다는 것을 눈 꼭 감고 외면하면 하루가 워낙 ‘집콕’으로 편리해서, 내 삶이 시나브로 단절과 고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깨닫기가 힘들다.
헬레나가 말하는 ‘행복의 경제학’, 로컬 중심의 경제 공동체는 회복될 수 있는가? 또, 어제의 라다크였던 대한민국은 어떤 미래를 앞두고 있는가? 책은 세계화와 지역화에 대한 뿌리 깊은 오용과 오해를 논리정연하게 반박하고 희망찬 사례들까지 제시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시간에 대한 신랄한 예견을 아프게 느끼고, 제안된 해결 방법을 ‘큰 그림 행동주의’로 동참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른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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