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귀환, 지속가능한 동네커뮤니티를 기대하며

글 | 정수희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안녕, ‘공진’

얼마 전 종영한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한 편이 우리를 설레게 했다. 가상의 작은 어촌마을을 배경을 펼쳐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멋진 남녀배우들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몰입시킨 것은 마을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드라마 속 ‘공진’이라고 불리는 마을은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1시간 반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편의시설이라고는 빤히 보이는 구멍가게와 솜씨 없는 카페 한두 곳이 전부이고 비밀도 없고, 말도 많다. 피곤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공진은 따뜻하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고향, 사실 요즘 청년들에게는 ‘할머니집’ 정도로나 떠올리는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이를 그려낼 수 있었던 데에는 촬영지가 된 어촌마을의 아름다운 경관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냄새 나는 작품 속 삶의 형태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필자를 포함한 우리는 채 경험해본 적 없는 익숙한 새로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출처: tvn홈페이지)

로컬의 발견 : 동네라는 장소

로컬(local)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코로나19라는 유래 없는 팬데믹 상황은 우리를 로컬에 다시금 주목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시너지 효과다. 로컬은 대도시의 상대적인 의미로서의 지방 중소도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공간으로서 동네 역시 이에 해당한다. 각자의 삶의 기반이 되는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단위로 이해되기도 한다.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상황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좀 더 나중의 일이라고만 여겨졌던 온라인 환경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제약으로 시작했지만, 발전과 전환으로 우리에게 자리 잡았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환경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모임과 소비를 위해 중심지로 나아가지도 않아도 해결이 가능해졌다. 자의든 타의든 동네라는 작은 영역 안에서 당분간의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이로 인해 매일을 지나쳐가던 동네가 매일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조금 더 가까워졌다. 분주하여 혹은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았던 동네가 비로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각자의 로컬에 대한 발견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는 《비장소》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인류학적 공간과 대비되는 장소로서 비장소(non-places)의 개념을 주장했다. 인류학에서 장소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와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오제는 이에 대비되는 유기적인 사회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을 비장소라고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이동(교통), 소비,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환승과 소비로 점철된 우리의 일상공간들 역시 비장소화 된 공간들이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작은 행정의 단위이자 개인의 영역으로 동네는 많은 이들에게 비장소였다. 가장 가까운 공간이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혹은 더 많은 관계성의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쳐지나가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 도망갈 수 없는 불편한 현실이 우리를 동네에 머물게 한다. 드디어 동네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로컬의 연결 : 동네의 작고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들

이유야 어찌했던 동네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공간들이 보인다. 그들 중 주목되는 공간은 작은 카페와 서점,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공간들이다. 동네의 새로운 아지트들이다.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초록놀이터', 청년 농부 케이팜스타 토크콘서트

이전의 전통적인 장소는 학교, 교회, 동네상점 등 사람들의 활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들을 지칭했다. 일상 속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장소들이다. 물론 이들 장소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다만, 이러한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우리의 동네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범주로 확장되었기에 이전의 개념으로 이를 규정짓기는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가장 친밀했던 동네라는 공간은 한동안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베드타운과 같은 의미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비대면의 일상은 동네의 공간을 다시금 전통적인 장소로 회귀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 동네(로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기에 비단 팬데믹 상황 때문 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가속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네 안에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공간들은 우리의 시선을 불러 모은다. 공공 혹은 민간의 지원으로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동네라는 특정 장소 안에서 생겨나고 기능하고 있다. 동네마다 브랜드 카페에 밀려 사라졌던 작은 카페들이 다시 생겨나고, 작은 책방들이 발견된다. 동네브랜드의 귀환이다. 이들은 원래의 기능을 넘어 동네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한다. 커피를 팔고, 책을 파는 것 이외에 다양한 문화행위를 통해 동네의 내외부를 잇는다. 이들을 기반으로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취향이 생겨나고 그들 간의 커뮤니티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전에는 특정한 지역에 가야지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문화생활과 문화적 커뮤니티들이 동네 안에서도 가능해지고 있다.

도봉구 방학동 동네서점 <사유의 사유> (필자촬영)

도봉구 방학동 동네서점 <사유의 사유> (필자촬영)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그동안 진행되어 온 여러 노력들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제 4년차 막바지사업에 접어든 문화도시사업과 작은도서관, 생활문화센터 등 그간 진행되어 온 여러 정책사업들의 결과가 팬데믹이라는 의도치 않은 상황과 맞물리며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문화도시를 꿈꾸며 준비해온 여러 거점시설과 커뮤니티들이 코로나를 지나오며 도시라는 로컬을 기반으로 정비되고 강조됐다. 작은도서관과 생활문화센터는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지역의 문화적 앵커시설로서 자리잡고 있다. 해당 정책사업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강조되었던 로컬의 의미와 중요성이 개인의 일상과 연결되며 구체화되었다. 제한된 일상으로 인해 가까운 동네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경험과 소통의 가치에 대해 좀 더 실제적인 공감대가 형성했다. 오제의 주장에 빗대 ‘비장소’라 여겨졌던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장소’의 의미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 상황이 마냥 웃을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지속가능한 동네커뮤니티를 위해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동네책방문화사랑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서울 마포구)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동네책방문화사랑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서울 마포구)

코로나19로 인해 동네가 주목받고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들 공간의 운영은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점하고 있고, 공공시설들은 축소 또는 개방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로컬에 주목했지만, 이제 로컬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한편으로 그 공간들이 다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기승을 부릴지 알지 못하지만, 이 기간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일회성의 지원금도 도움이 되겠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들이 지역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지원방향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역의 문화적 활동들을 수행하는 소상공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들을 거쳐 지나가는 사업지원이 아닌,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지원이 시급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네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 ⓒ 동네책방 사랑방 청학서점(경남)

동네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 ⓒ 동네책방 사랑방 청학서점(경남)

한편으로, ‘위드코로나’ 시대가 목전이다. 다시금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동네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것인가 또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의 로컬에 대한 관심을 다시 외부로 뺏기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 싹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다양한 동네활동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동네의 발견과 관심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동네커뮤니티의 실체가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역의 여러 문화공간들이 위치해야 한다.

우리들의 ‘공진’을 꿈꾸며

다시 ‘공진’이라는 가상의 마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공진에는 동네의 사사로운 사정을 살펴보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맛은 없지만 동네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어준 카페가 있다.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매일을 마주치면서도 굳이 다시 만나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마을회의가 있었고, 이들의 의견을 귀찮은 듯 적극적으로 수용해주는 주민센터가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잇는 또 다른 공간들과 사람들이 존재한다. 참으로 별다를 것 없는 그런 마을이지만, 왜인지 부러운 것은 어떤 연유일까.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소풍가는길', 월간 난장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소풍가는길', 월간 난장

우리는 각자의 공진을 꿈꾼다. 내가 돌아갈 수 있고, 나의 삶을 누릴 수 있고, 나를 돌봐 줄 수 있는 그런 삶의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 이제 로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반으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동네가 제각각의 공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 중심에 동네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작은 문화공간들이 놓여 있길 또한 기대한다.

정수희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다 어느덧 미술이 만들어진 장소와 동시대 사람들로 관심이 옮겨갔다. 박물관에 근무하며 현장을 경험하고, 문화콘텐츠를 공부하며 자유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화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노력했다. 지역문화와 문화정책에 관심을 갖고 꾸준한 연구자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현재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미술문화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연구와 강의를 진행 중이다. 언젠가는 도시에서의 공예적 삶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동네의 귀환, 지속가능한 동네커뮤니티를 기대하며

글 | 정수희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안녕, ‘공진’

얼마 전 종영한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한 편이 우리를 설레게 했다. 가상의 작은 어촌마을을 배경을 펼쳐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멋진 남녀배우들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몰입시킨 것은 마을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드라마 속 ‘공진’이라고 불리는 마을은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1시간 반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편의시설이라고는 빤히 보이는 구멍가게와 솜씨 없는 카페 한두 곳이 전부이고 비밀도 없고, 말도 많다. 피곤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공진은 따뜻하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고향, 사실 요즘 청년들에게는 ‘할머니집’ 정도로나 떠올리는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이를 그려낼 수 있었던 데에는 촬영지가 된 어촌마을의 아름다운 경관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냄새 나는 작품 속 삶의 형태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필자를 포함한 우리는 채 경험해본 적 없는 익숙한 새로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마을사람들과 공간 (출처: tvn홈페이지)

로컬의 발견 : 동네라는 장소

로컬(local)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코로나19라는 유래 없는 팬데믹 상황은 우리를 로컬에 다시금 주목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시너지 효과다. 로컬은 대도시의 상대적인 의미로서의 지방 중소도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공간으로서 동네 역시 이에 해당한다. 각자의 삶의 기반이 되는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단위로 이해되기도 한다.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전경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상황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좀 더 나중의 일이라고만 여겨졌던 온라인 환경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제약으로 시작했지만, 발전과 전환으로 우리에게 자리 잡았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환경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모임과 소비를 위해 중심지로 나아가지도 않아도 해결이 가능해졌다. 자의든 타의든 동네라는 작은 영역 안에서 당분간의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이로 인해 매일을 지나쳐가던 동네가 매일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조금 더 가까워졌다. 분주하여 혹은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았던 동네가 비로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각자의 로컬에 대한 발견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는 《비장소》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인류학적 공간과 대비되는 장소로서 비장소(non-places)의 개념을 주장했다. 인류학에서 장소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와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오제는 이에 대비되는 유기적인 사회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을 비장소라고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이동(교통), 소비,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환승과 소비로 점철된 우리의 일상공간들 역시 비장소화 된 공간들이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작은 행정의 단위이자 개인의 영역으로 동네는 많은 이들에게 비장소였다. 가장 가까운 공간이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혹은 더 많은 관계성의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쳐지나가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 도망갈 수 없는 불편한 현실이 우리를 동네에 머물게 한다. 드디어 동네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로컬의 연결 : 동네의 작고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들

이유야 어찌했던 동네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공간들이 보인다. 그들 중 주목되는 공간은 작은 카페와 서점,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공간들이다. 동네의 새로운 아지트들이다.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초록놀이터', 청년 농부 케이팜스타 토크콘서트

이전의 전통적인 장소는 학교, 교회, 동네상점 등 사람들의 활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들을 지칭했다. 일상 속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장소들이다. 물론 이들 장소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다만, 이러한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우리의 동네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범주로 확장되었기에 이전의 개념으로 이를 규정짓기는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가장 친밀했던 동네라는 공간은 한동안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베드타운과 같은 의미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비대면의 일상은 동네의 공간을 다시금 전통적인 장소로 회귀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 동네(로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기에 비단 팬데믹 상황 때문 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가속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네 안에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공간들은 우리의 시선을 불러 모은다. 공공 혹은 민간의 지원으로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동네라는 특정 장소 안에서 생겨나고 기능하고 있다. 동네마다 브랜드 카페에 밀려 사라졌던 작은 카페들이 다시 생겨나고, 작은 책방들이 발견된다. 동네브랜드의 귀환이다. 이들은 원래의 기능을 넘어 동네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한다. 커피를 팔고, 책을 파는 것 이외에 다양한 문화행위를 통해 동네의 내외부를 잇는다. 이들을 기반으로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취향이 생겨나고 그들 간의 커뮤니티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전에는 특정한 지역에 가야지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문화생활과 문화적 커뮤니티들이 동네 안에서도 가능해지고 있다.

도봉구 방학동 동네서점 <사유의 사유> (필자촬영)

도봉구 방학동 동네서점 <사유의 사유> (필자촬영)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그동안 진행되어 온 여러 노력들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제 4년차 막바지사업에 접어든 문화도시사업과 작은도서관, 생활문화센터 등 그간 진행되어 온 여러 정책사업들의 결과가 팬데믹이라는 의도치 않은 상황과 맞물리며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문화도시를 꿈꾸며 준비해온 여러 거점시설과 커뮤니티들이 코로나를 지나오며 도시라는 로컬을 기반으로 정비되고 강조됐다. 작은도서관과 생활문화센터는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지역의 문화적 앵커시설로서 자리잡고 있다. 해당 정책사업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강조되었던 로컬의 의미와 중요성이 개인의 일상과 연결되며 구체화되었다. 제한된 일상으로 인해 가까운 동네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경험과 소통의 가치에 대해 좀 더 실제적인 공감대가 형성했다. 오제의 주장에 빗대 ‘비장소’라 여겨졌던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장소’의 의미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 상황이 마냥 웃을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지속가능한 동네커뮤니티를 위해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동네책방문화사랑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서울 마포구)

동네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모습 ⓒ 동네책방문화사랑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서울 마포구)

코로나19로 인해 동네가 주목받고 동네 안에서의 문화적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들 공간의 운영은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점하고 있고, 공공시설들은 축소 또는 개방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로컬에 주목했지만, 이제 로컬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한편으로 그 공간들이 다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기승을 부릴지 알지 못하지만, 이 기간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일회성의 지원금도 도움이 되겠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들이 지역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지원방향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역의 문화적 활동들을 수행하는 소상공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들을 거쳐 지나가는 사업지원이 아닌,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지원이 시급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네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 ⓒ 동네책방 사랑방 청학서점(경남)

동네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 ⓒ 동네책방 사랑방 청학서점(경남)

한편으로, ‘위드코로나’ 시대가 목전이다. 다시금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동네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것인가 또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의 로컬에 대한 관심을 다시 외부로 뺏기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 싹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다양한 동네활동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동네의 발견과 관심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동네커뮤니티의 실체가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역의 여러 문화공간들이 위치해야 한다.

우리들의 ‘공진’을 꿈꾸며

다시 ‘공진’이라는 가상의 마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공진에는 동네의 사사로운 사정을 살펴보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맛은 없지만 동네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어준 카페가 있다.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매일을 마주치면서도 굳이 다시 만나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마을회의가 있었고, 이들의 의견을 귀찮은 듯 적극적으로 수용해주는 주민센터가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잇는 또 다른 공간들과 사람들이 존재한다. 참으로 별다를 것 없는 그런 마을이지만, 왜인지 부러운 것은 어떤 연유일까.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소풍가는길', 월간 난장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 지역문화우리 사업 참여 단체 '소풍가는길', 월간 난장

우리는 각자의 공진을 꿈꾼다. 내가 돌아갈 수 있고, 나의 삶을 누릴 수 있고, 나를 돌봐 줄 수 있는 그런 삶의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 이제 로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반으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동네가 제각각의 공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 중심에 동네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작은 문화공간들이 놓여 있길 또한 기대한다.

정수희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다 어느덧 미술이 만들어진 장소와 동시대 사람들로 관심이 옮겨갔다. 박물관에 근무하며 현장을 경험하고, 문화콘텐츠를 공부하며 자유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화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노력했다. 지역문화와 문화정책에 관심을 갖고 꾸준한 연구자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현재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미술문화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연구와 강의를 진행 중이다. 언젠가는 도시에서의 공예적 삶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