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아포리즘(Aphorism)
2021 지역문화우리사업에서 만난 청년들을 생각하며

글·사진 | 심한기 서울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사진제공 | 지역문화우리 참여단체, 지역문화진흥원
청년, 문제인가 존재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언어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내일은 그 공허함까지도 가물가물해질 것 같다. 익숙한 편리함들이 빠르게 스쳐가는 시간에게 몸을 맡긴 듯하다. 그래서인가. 그것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한 시간의 삶, 하루의 삶을 귀하게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잘 안 보인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서사(narrative)들이 잘 안 보인다. 2019년부터 지역문화진흥원과 함께 ‘지역문화우리’ 청년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도 잘 보이지 않는 서사를 만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청년팔이에 많이 시달리며 사회에 섞이지 않으려는 예술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집단(무엇이든)에서 경제나 사업에 묶이지 않고, 순수하게 예술로만 모여 갈피를 못 잡아 흔들림이 요즘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김준기

(좌) 지누아리 촬영을 위한 영상 워크숍 (우) 지누아리의 이야기를 노래로 ⓒ 강릉 무엇이든
(좌) 지누아리 촬영을 위한 영상 워크숍 (우) 지누아리의 이야기를 노래로 ⓒ 강릉 무엇이든

(좌) 지누아리 촬영을 위한 영상 워크숍 (우) 지누아리의 이야기를 노래로 ⓒ 강릉 무엇이든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란 사회적 이슈와 문제 또는 공공지원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가고 있다. 지원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의 서사를 만들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살피는 것에는 여전히 무지하고 인색하다. 이미 정해진 듯한 삶의 조건에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사소한 진정성’은 그들의 짧은 아포리즘 속에 충분하게 묻어 있다.

“별거 없는 이야기라고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써야만 하는 이유였다. 지누아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지누아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고기은

그거 별거 없는 이야기야, 그거 쓸모가 없는 시도야. 해봐야 할 질문과 시도들이 ‘번듯한 생존’을 요구하는 타자의 시선들에게 날치기를 당한다.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아마도 이런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한 공공적 관심과 응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명을 모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찾고 싶은가요’라고 묻는다. ‘세련된 콘텐츠를 개발하세요’라고 요구하지 않고 ‘촌스러운 과정을 만들어보세요’라고 응원한다.

“나는 종이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흑백의 나비를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고 흐릿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나를 들여다보고 이것들이 나의 노래가 되는 것, 우리의 길의 끝에 이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박희진

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주식회사 섬도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

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주식회사 섬도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

생존의 시간, 실존의 시간

생존의 시간 속에는 상상도, 바라봄도, 돌아봄도, 노래와 시(詩)가 쉬어갈 자리가 없다. ‘숨’ 같은 자리가 없으니 자꾸 다른 것들로 채우려 한다.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실존의 시간 속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빛이 나고, 나의 사진이 언어가 되고, 나의 노래가 서사가 된다.

영월 물무리골 숲에서 마을 속 멜로디 찾기 ⓒ 살롱더스트링

영월 물무리골 숲에서 마을 속 멜로디 찾기 ⓒ 살롱더스트링

“마음속에서 내 음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계속 내 마음을 탐색하면서 조금씩 발견했던 음악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나를 관통하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어떨 때 그것은 검은 안개로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며, 햇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리로도 다가오며 투명한  빛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주변에 많은 존재들은 셀 수없이 많은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이야기를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변선희

일상도 삶도 해치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고 만지면서 살아가야 행복하다. 자신이 서 있는 동네도 마을도 마주치고 찾아가고 만지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아야 하며, 미래를 위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의 과정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

활동을 하면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바라볼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함께 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더 깊게 관찰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손명남

10년 넘게 컨설턴터, 협력기획자, 멘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현장을 만나고 청년을 만나고 있지만 아직도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만남을 멈추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늘 변함이 없다. 사업비를 지원했으니 사업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끌어가야 할 당연한 명분이 우선이었다면 이미 힘을 잃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이유와 근거를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었기에 청년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다.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사업들과 행정은 뗄 수 없는 관계라 생각했다. 고리타분하기도 한 지역의 관료들의 비위에 맞춰 사업을 하다보니 억지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문화우리 사업을 하며 개인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창의적인 사업을 하다보니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다. 남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 우리가 하고 싶은 과정을 그리는 게 훨씬 보람 있고 값진 일이라 생각이 들어 모든 활동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최종혁

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관악책방연합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

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관악책방연합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

‘문화가 있는 날’에서 ‘서사가 있는 날’로

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흘깃 들어오는 파란 하늘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는가? 새롭거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질문과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살랑이는 바람이며, 그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이며, 그 사이로 피어나는 파란 하늘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와 서사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생존과 실존을 애써 분리할 필요도 없다. 생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실존을 발견해가고, 실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생존을 연결해볼 수 있다면 나의 서사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동네에서 일상포착 ⓒ 앤컴퍼니

동네에서 일상포착 ⓒ 앤컴퍼니

‘나라를 구하겠다’는 식의 과장된 언어 사용과 비현실적인 사업 목표 설정, 그리고 제공자 중심의 콘텐츠는 아무리 다시 봐도 타인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나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이 사업을 통해서 진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그리고 이 사업 이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
본질에 대해서 다시 정직하게 질문해보았다. 그리고 벌써부터 사업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은 뒤 진심으로 눈물이 나왔다. 국가지원금이라는 압박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었다는 부담감, 사업은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언제부터 자리 잡았을까?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부터? 이 프로젝트를 처음 지원했을 때부터? 아니, 지역에서의 활동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순간부터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멘토링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동안 나를 방해하고 있던 필요 이상의 모든 걱정들을 이제는 흘려보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시간의 멘토링은 우리들의 사업 계획서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나의 태도도 보완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앤컴퍼니’ 청년 윤태현

남해 ‘카카카’ 무인도영화제 현장 스케치 ⓒ 지역문화진흥원

남해 ‘카카카’ 무인도영화제 현장 스케치 ⓒ 지역문화진흥원

3년째 흘러가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축제나 문화행사(공연) 중심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으로 엮이면서 본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뜻한 소통과 접촉을 놓지 않으며 당사자로서 삶과 문화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다. 성과나 결과보다는 진정성에 마음을 두며 ‘공모사업의 반전’을 시도했던 ‘지역문화우리’ 사업의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벗어 버리고 서로의 힘과 가능성을 모아갈 수 있는 ‘전환’으로서 ‘문화가 있는 날’이 아닌 ‘서사 있는 날’은 어떨까?
그동안 청년들의 서사를 응원했다면, 이제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서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문화진흥원이 서사의 주체가 되어 청년의 다양한 서사들에 반응하고 그 사서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의 성찰과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심한기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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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사IN 백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