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생태계를 위한 협력, 그 첫 1년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 지원사업’은 기존의 문화사업간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 시설과 프로그램, 문화 매개자와 문화 참여에 관심 있는 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들을 통해 해당 지역 맞춤형 문화정책이 펼쳐질 수 있는 문화 안전망을 만들어 가는 사업으로, 지역협력 네트워크 확장, 주도적 주민 주체 발굴 및 주민주도형 문화 활동 확산, 문화공동체 형성, 지속 가능한 자생적 생태계구축 등을 목적으로 한다.
통합사업의 특징은 부서별 목적사업이었던 6개 사업(인생나눔교실, 무지개다리, 문화이모작,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지역문화인력 배치지원, 신중년 문화예술교육지원)을 한 지역에 통합하여 지원하는 것으로 문화를 통해 발생하는 사회적 가치가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전달되고 모두가 함께 누리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처음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공모’ 사업을 들었을 땐 그간 많은 공모 사업이 그러하듯 ‘또 하나의 목적사업을 공모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앞섰다.
대부분의 정부 공모사업이 정책 혹은 사업의 방향이 정해지고 이를 잘 수행하거나 수행할 필요가 있는 지역과 단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유용한 경우도 있겠으나 문제는 거의 모든 사업이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현장의 불만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지역의 현실은 고려치 않고 일반화된 분석을 기초로 설계된 사업을 수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아쉬운 마음에 응모는 하지만 정작 지역에 실제로 필요한 사업인가? 필요한 사업으로 적용 가능한가에 대해선 늘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업은 그 출발점이 같다.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다르고 여건이 다른데 출발선을 동일시하고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한 가지로 한다는 것은 애초에 공정하지도, 지역을 이해하지도, 무엇보다 목적 달성을 위한 성과주의적 관점이 짙게 깔린 탓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속지원이니 문화 분권, 문화자치의 개념이니 하는 것은 애초에 고민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토록 격하게 공공 공모사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꺼내는 이유는 그간 많은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음에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서운함이다.
사실 지역은 어느 한 곳 같은 데가 없다. 얼핏 둘러보면 농산어촌과 도시로 구분되고 이는 또 대도시와 중소도시로, 오지와 격오지로 나뉘어 같은 그룹 내 삶의 모습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각의 삶의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고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마다 질서가 바로 지역문화의 근간이다.
공공의 지원은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과 여건 속에서 지역을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지원사업을 지역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필요로 하는 지원을 위해 공모사업을 설계할 권한도 없거니와 선택지가 많지도 선택권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공모’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기대 때문이다. 사실 지역의 문화생태계는 단시간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기존 질서를 바꾸거나 새롭게 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한다. 하물며 특정 목적을 위한 단위 지원사업으로 생태계가 변화하거나 생성되지 못한다. 당연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지역의 변화를 견인해낼 계기성 사업을 배치하고 지역의 동력을 만들며 이를 토대로 활동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지역사회 내 역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곧 배움과 학습의 과정일 수 있으며 지역 내 주체의 역할 만들기이다.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만능키가 존재할 수 없으며, 알약 하나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도 당연히 다양한 목적을 가지는 단위지원 사업들이 연계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공모 사업의 당위와 명분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입장에서 지역의 필요에 의해 설계되고 지원되는 분권과 자치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모사업의 패러다임 전환, 바로 통합지원사업의 출발이다.


물론 사업 첫해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중이니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여전히 각각의 단위사업은 고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연함을 부여하는 데 인색하고, 각각의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구조는 보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사업 첫해이다 보니 지역에서도 이 사업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의 차이가 있다. 여러 사업을 한 번에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도 있겠고, 각각의 사업을 지역 관점에서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가의 대안을 만드느라 어려워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문화 생태계 관점에서의 지역 진단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이다. 애초 공모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 진단을 위한 자료와 해석을 요청해 이를 근간으로 사업을 수행 중이지만 치밀하지는 못하다. 여러 전문가와 컨설턴트들이 현장과 결합하여 지역을 읽고 대안을 만드는 일을 돕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러한 여러 사업 초기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필자 개인적으로는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공모’ 사업에 우호적이다. 아직 보완해야 할 지점은 분명 많으나 본 사업을 해야 할 명분과 (지역입장에서의) 실리에 비하면 사업을 포기할 어떤 이유도 제공하지 못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국의 6군데 사업을 조금 더 면밀히 살피고 보완한다면 분명 지역의 입장에서 필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들은 지역의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위 목적의 당해 년도 지원사업으로, 문화예술 현장을 연명시키는 지원정책에서 생태계 차원의 근간을 만드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긴 호흡으로 지역의 입장에서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업의 경우만 하더라도 문화부 각각의 부서 입장과 지원을 담당하는 주관기관의 입장 등 여러 관점이 있을 것이며 또 존재할 것이다. 여러 현실 속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준 점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수요자 입장에서의 행정 서비스는 당연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 1년 차 실험이 2년을 지나 장기적 관점에서 다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정과 정책은 바뀌어도 지역은 계속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