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경우 코로나 확진자가 수백명을 넘나들던 시기가 있었다. 10 여명 이하로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까지 한달 이상을 고립과 유폐의 세월을 보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상가는 비었으며, 업무 이외의 만남은 힘들었다. 봄꽃이 지천으로 피던 그 봄에 우리는 집과 가족과 마을 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일터나 학교보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일상에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이 등장했다. 지나다니던 골목이 다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동네 가게의 매출이 늘고, 이웃들과의 대면이 늘고, 요리 솜씨가 늘고, 멀어졌던 생활 감각과 공동체 감각이 회복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는 사람을, 물건을, 삶터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슬기로운 낯선 생활을 통해 사람이, 마을이, 공동체가 획득해온 작고 소박하면서도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봄, 백무산 시인은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의 <정지의 힘>에서 우리가 마침내 ‘맘츨’때임을 말했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무엇이 되지 않은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한다/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지난 6월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 172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라며 코로나 종식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생태계 파괴에 따른 재난, 지속될 위기의 원인이 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말씀하셨다.
제임스 쿤슬러는 ‘작은 공동체로 돌아가 자립성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연과 공색하고, 이웃과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가까운 것을 귀하게 여기며, 지역적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삶의 소수성과 타자성을 응원하는 생태적 삶의 회복하는 것과 더불어 느슨한 연계와 지역화, 고립이 아닌 자립화 경제 ,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지닌 사회적 연대경제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코로나는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은 코로나의 원인에 대한 근원적이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소독과 방역, 의식과 격리, 배제와 추방이며, 스마트, 디지털, 비대면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방식의 접근에 대해 경고한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디지털 기기를 공교육 수단으로 채택할 때 나타날 심각한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기존의 교재보다도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규결과는 물론, 더 나아가 영구적 주의력 결핍, 사고능력 저하, 소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 과사용이 낮은 공감능력이나 낮은 삶의 만족도와 뚜렷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연구결과(2015년 마틴 멜허즈 외, 2017년 자오 칸 외, 2018년 번트 라흐만 외)도 많다.(강인규, 오마니뉴스, 2020.7.14. 편집 인용)
화상회의에 대한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다수의 신경과학자, 임상심리학자, 사회심리학자, 컴퓨터 공학자, 교육심리학자들은 화상회의를 통한 소통이 두뇌와 심리상태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화상회의 시스템은 현실의 대화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말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도 대화한다. 비언어적 소통이 대화에서 오가는 정보의 70~93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현실에서 우리가 상대 표정에 반응하는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의 시간이다. 그러나 화상회의는 대화 상대의 섬세한 얼굴근육을 충분한 속도, 크기, 선명도로 재현하지 못한다. 비디오 영상으로 매개된 ‘비대면 소통’이 공감을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점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다른 컴퓨터 화면으로 전송되는 영상이 상대의 미묘하고 섬세한 표정 변화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비대면’ 대화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교실, 거실, 사무실, 병원 진료실에 도입되어 소통을 주도하게 됐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 정서, 사회에 어떤 장기적으로 누적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탓이다.(강인규, 오마니뉴스, 2020.6.18. 편집 인용)
코로나에 대응하는 문화정책 또한 ‘비대면’과 더불어 차단과 배제의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100개의 시간, 100개의 장소로 나누어 진행된 춘천마임축제는 앞으로 우리가 문화와 관련된 행위들을 어떻게 펼쳐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각종 문화 행위가 동시성과 집중성, 집단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돌보고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삶의 개별성과 소수성을 지지하며, 보다 다양한 장소와 시간이 문화적인 일상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행정이나 중간지원조직이 재난에 대처하는 시각 또한 ‘코로나 시대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문화예술의 역할과 근복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비대면, 온라인 영상 제작의 방식보다는 목적 관객(10명 미만, 지역 주민/지역 단체/예술인 등 당사자)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콘텐츠에 대한 방안을 토론하고,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비대면 영상제작하는 경우에도 카메라 한두 대의 기록용 동영상 정도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부 공연을 좀 더 수준 높은 동영상을 제작해 향후 주민상영회, 교육용 콘텐츠 등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실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실행할 수 없는 사업과 예산 및 활동을 지역의 다양한 당사자 주체와 공론화하는 과정으로 삼고, 당사자 주체들을 발굴하고다양한 실험을 함께 해보는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이 ‘비대면’을 전제하기보다는 다거점, 분산형 모임과 시간, 다주체의 다양한 활동이 일상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집중적인 공간과 시간을 다양한 공간과 시간으로 전환함으로써 일상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이자,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장소/공간, (문화적) 시간 공유감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