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지역문화와의 연대, 문화예술의 든든한 후원자 될 터”
- 김병호 ‘즐거운사람들’ 극단장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무대


연극 한 편에 마음을 몽땅 빼앗겼던 소년은 태산 같았던 아버지를 기어이 무너뜨리고 연극의 길에 들어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의 길을 선택할 법했지만, 연극 무대를 크게 보았던 것은 김병호 연출의 숙명이었다.
극단 ‘즐거운사람들’과 돌연 공릉동 연습실을 지역민에게 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열망도 쉬이 넘길 수 없었던
그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문화라는 계기가 사람들을 모이고 소통하게 할 것이라 단언하는
김병호 단장에게 지역문화가 가야 할 방향을 물어본다.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극단 ‘즐거운사람들’의 예술감독이자 단장을 맡고 있는 김병호라고 합니다. 프로듀서이자 연출가, 제작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직업으로 선택한 지 벌써 3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연극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고향 광주에서 중학교 2학년 시절 중 관람한 추성웅 선생의 <빠알간 피터의 고백>은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집성촌에 살던 작은 소년이 연극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 고집에 져 주신 어머니의 도움으로, 방학만 되면 서울로 올라와 청소년 극단에서 연극을 배우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 첫 역할은 무대를 채우는 군중 중 한 명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그 배움은 안양예고의 전신인 안양예술학교에 진학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며 잠시 연극의 길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저에게 연극은 저버릴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원주 1군사령부 통일대예술단 창단멤버로 차출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순회 위문공연도하고 국방부 영화와 배달의 기수에도 나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바로 배우 손병호, 연극연출가 이재상, 조민철, 무대감독 김완식, 코미디언 최왕순 등이었습니다. 결국 그 인연으로 제대 후 민중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극단에 들어가 보니 2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40명이 넘는 단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습니다. 이래서는 극단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까지 코미디 연기자를 꿈꿨던 저는 자진해서 제작기획파트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3년의 노력 끝에 기존 관습의 벽에 부딪힌 저는 극단을 책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1989년 연극이 요구하는, 무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지원하고자 다운기획을 설립합니다. 성북동의 작은 연습실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연극계 원로 김옥옥 선생의 추천으로 프로듀서로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획실, 영업팀이 전문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일본 연극계의 선진 시스템을 직접 확인하며 제가 지향하는 극단 운영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가수 콘서트 등을 통해 앞뒤 보지 않고 재원을 마련하며, 창작극, 창작뮤지컬을 기획 제작하면서 참 신명 나게 살았다 생각합니다. 1992년 인천에서 창단된 극단 ‘즐거운사람들’을 95년 서울로 영입 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릅니다.

▲ 연극 《집》 공연 사진 (출처: 극단 ‘즐거운사람들’ 블로그)

문화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꿈_

Q. 그렇게 극단 ‘즐거운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셨군요. 극단 ‘즐거운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하였는지 좀 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말씀드린 대로 극단 ‘즐거운사람들’은 26년의 역사를 가진 극단입니다. 1992년 인천에서 창단하였으나 첫 공연 이후 활동이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1995년 다운기획과 함께하며 드디어 주 활동 무대를 서울로 옮겨 (사)한국연극협회 정회원 단체와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정회원 단체로 가입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극단 ‘즐거운사람들’과 막 함께하기 시작한 무렵 저는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999년 아시테지 세계총회에 아시테지코리아(이사장 김우옥)멤버들과 노르웨이에 가서 아시테지 세계대회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슬랩스틱과 개그에 머물렀던 국내 아동극과 달리 유럽의 아동극은 중력, 바람, 물 등 주제가 다양하고 대사가 거의 없는 모노드라마 등 형식 또한 매우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우들이 나이가 많은 노년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이의 친구는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을 연극에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인생의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가진 이들이 차세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이상적인 구조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열흘은 제가 그동안 운영에 급급해 잊고 있었던 ‘연극을 통해 지향하고자 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다운기획을 정리하고 극단 ‘즐거운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기까지 또다시 1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오늘날 극단 ‘즐거운사람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전문 연극 단체로 어린이극을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창작 공연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 어린이 뮤지컬 《책키와 북키》 포스터 사진 (출처: 극단 ‘즐거운사람들’ 블로그)

Q. 하나하나 애정이 많으시겠지만, 연출하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작품이신지요?

A.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작가를 모집하고 캐스팅을 하는 바쁜 나날이었지만, 극단 ‘즐거운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연출에 나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열망이기에 여러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창작연극 〈북어대가리〉와 창작뮤지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꼽고 싶습니다. 창작극은 무조건 망한다는 업계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성공한 작품들입니다. 또 오리지널 멤버를 그대로 캐스팅해 연출했던 <여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지난 악극에 비교할 수 없이 세련된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지역생활문화 활성화 워크숍 현장 사진 (사진: 극단 ‘즐거운사람들’ 제공)


집성촌에서 자라며 익숙했던 관혼상제가 하나의 큰 무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관혼상제는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죽은 자를 위한 형식이 아닙니다.
산자를 모으고 소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화의 역할도 그런 것입니다. 삶과 떨어져서도,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Q.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이외에 지역민들과도 다양한 생활문화 예술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 계기는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A. 20주년을 앞두고 극단 ‘즐거운사람들’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시테지 코리아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국제 아동극 축제 아시테지 여름축제 예술감독으로 일한 경험을 통해 극단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 연대의 첫 번째 시도는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초창기 극단의 모든 시스템이 다수가 서로 의견을 내어 결정하는 동인제 시스템이었기에 수월하게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연대의식을 학습하자, 천천히 10년을 두고 연대의식을 쌓아가 보자는 마음으로 연습실이 있는 공릉동 지역민들과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릉동을 자세히 살펴보자 지역의 매력이 보였고, 연습실을 개방하자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단원들이 동아리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생활문화를 인식하게 되었고, 생활문화를 알게 되자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문화적 수요가 지역 내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현재 개방된 공릉동 연습실을 자치적으로 이용하는 동아리는 노원 풍물단, 외국인 사물놀이 엑스팻츠, 주부극단 마마, 실버극단 태랑, 어린이극단 꿈동이, 청소년극단 화랑, 공릉문화봉사단 등 7개에 이르고, 다문화 노래봉사단 나비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와 단원들은 다시 지역의 동아리에 참여하여 지역과의 연대를 더 단단히 하고 폭넓은 문화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공릉 문학 동아리인 시와 꽃, 노원 문화클럽 써니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2017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마을축제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 극단 '즐거운사람들' 제공)

Q. 전문 문화기획자로서 지역민들과 생활문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싶으신지요?

하하하. 얻은 것은 고단함입니다. 하지만 배움이 있었습니다. 지역민과의 생활문화 예술 활동은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어떤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본래의 목적이었던 연대의식을 착실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극단 30주년을 바라보며 사회적 협동조합을 구성할 때 이제는 지역민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역민이 문화의 수혜자이자 양질의 관객이며 후원자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 한 명의 협동조합 주주로서 극단과 함께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극, 체험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된 유유페스티벌.
유유페스티벌에서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함께하는 김병호 단장 모습.
(사진: 극단 '즐거운사람들' 제공)

어려울 게 무언가?
문화라는 계기를 만들면 사람은 모이고 소통한다_

Q. 앞으로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이 ‘문화기획자’로서 일상의 공간에서 비전문가인 지역민과 함께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극단을 위한 일로 시작했지만, 지역사회와 연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생활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드린 것 입니다.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꿈마을공동체는 마을공동체 우수사례로써 상도 받고 학교나 공공기관의 견학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의 일은 아니지만, 지역의 일에 주도적이 되어 더 많은 생활문화 활동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예술가의 사회적 기능이란 문화예술의 영역에 얽매이기보다는 지역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고 사람들에게 문화의 기회를 주고 그 속에서 영감을 받고 사람들을 문화의 참여자이자 지지자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혼자 계획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계획을 했다면 누구와 함께 갈지, 어떤 도움을 받을지가 중요합니다. 마을 단체 간의 협업, 정부의 지원 등 여러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공릉동에 있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다운복지관, 공릉종합사회복지관, 공릉행복발전소,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릉도깨비시장, 공릉1,2동 주민자치센터,노원나눔연대, 노원여성인력지원센터, 서울여성공예센터, 노원마을공동체지원센터, 노원문화원,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육사, 삼육대, 노원구청과 연계를 맺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역의 장점을 잘 살펴 건강한 연대를 쌓아가는 것도 지역 문화기획자로서 좋은 자세입니다.

지역문화=지역의 정체성_

Q.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지역문화’와 ‘생활문화’를 짧게 정의해 주신다면 무엇인가요?

지역문화와 생활문화는 그 역할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계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지역에 연대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문화를 대함에서 사고방식의 전환은 필요한 때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일상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인데 현재의 문화는 서울 외 지역이 독자적인 문화를 세우지 못하고 서울이라는 한정된 지역의 것을 답습하는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문화라 볼 수 없습니다. 그 지역에 맞는 것을 그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지역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문화는 곧 지역의 정체성과도 같습니다. 끈끈한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자발적으로 발전하는 지역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시 ‘귀천’ 중에서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선 극단 ‘즐거운사람들’과 공릉 지역민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을 세울 계획입니다. 또한, 지역민과의 연계로 이루어진 생활문화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정진할 계획이며, 그 활동을 위해 지역문화진흥원이 늘 그렇듯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리라 기대합니다. 어린이 뮤지컬 〈책키와 북키〉가 공연 중인데 성황리에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극계의 일원으로서 단원들이 안정된 급여를 받고 연극을 통해서 스스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시로써 행복했던 천상병 시인처럼 말입니다. 함께 했던 생활문화인들 모두가 문화계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는 날이 온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지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극단 ‘즐거운사람들’ https://blog.naver.com/joyfultroupe

김병호 단장은...

구로문화재단이사, 한국예총이사,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장, 아시테지 여름축제 예술감독 등을 역임하며 현)한국연극협회 이사, 한국공연프로듀서 협회 이사, 천상병예술제 예술감독, 노원구협치위원이며 기획, 제작, 연출, 예술교육, 축제운영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극인과 연극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써 나갈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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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