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인력

‘걸을수록 커지는 나를 발견하다’
- 지역문화인력 역량강화 프로그램
‘나는 걷는다’ 취재기

2018 지역문화인력 비전캠프2 ‘그리고 문화가 삶을 만든다’가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 한화리조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총 78명이 참가한 이번 캠프는 지난 여름 가평에서 열렸던 비전캠프1에서 수립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함께 사업 내용을 점검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영역의 학습을 통해 지역문화인력으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걸을수록 커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나는 걷는다’ 프로그램도 그러한 목적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몸의 속도를 그리워했다.”

1999년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걷는 여행”을 통해 걷기의 힘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실크로드를 걸으며 걸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이후 소년원 출신 아이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쇠이유(Seuil)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쇠이유는 프랑스어로 경계, 문턱이란 뜻으로, 청소년들에게 문턱을 뛰어넘어 사회의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쇠이유 프로그램은 소년원에 수감 중인 15~18세 청소년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 3개월 동안 하루 25㎞이상 총 2,000㎞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교정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소년은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과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고 하네요.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준답니다.

이렇듯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걸으면서 시작되는 자기 울림에 대해 경청해보는 ‘쇠이유 운동’은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필요한 행위입니다. 지역문화인력들은 걷기를 통해 자동차와 스마트폰으로 해체되어있던 '몸'을 복원시키고 인간이 가진 본연의 능력을 깨우게 됩니다. 또,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그램 동안 각 조들은 퍼실리테이터 한 분과 함께 제주도 곳곳을 걸으면서 문화공간을 탐색하게 됩니다. 각 조에게는 나침반과 지도, 식량 및 현금이 지급되며, 하루 종일 탐험과 세부 코스에 대한 논의의 시간도 주어졌습니다.

코스는 총 8개입니다. ‘수평선을 보며 해안선을 따라 걷다’를 시작으로, ‘섬을 넘어 섬을 걷다’, ‘오조리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 ‘그렇게 그렇게 오름을 걷다’, ‘그 억눌림을 털고 억새밭 걷다’, ‘삼나무 숲길 역사를 걷다’, ‘몽환적인 이끼군락 숲 속을 걷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복 사복 제주 숲길을 걷다’. 제목만으로도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할 주인공들인 4조입니다. 이미 전 날 일찌감치 우도 코스, ‘섬을 넘어 섬을 걷다’ 로 결정한 덕에 행동이 빠릅니다. 들떠있는 모습들이 몹시 즐거워 보입니다.


행사를 준비한 스텝들이 제공해준 여행에 필요한 여비와 간식입니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발견하는데 좋은 동반자가 되겠죠. 다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힘차게 출발합니다.


버스는 각 조별 루트의 시작점까지 지역문화인력들을 태워다 줍니다. 차가 많지 않았던 제주도의 도로 덕분에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풍경들이 지나갑니다.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한 시간 여만에 4조의 시작점인 우도 도항에 도착했습니다. 새파란 하늘은 계속된 이동으로 인한 피로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오늘은 뭘해도 좋을 것만 같은 날씨입니다. 조원들의 얼굴에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미소가 가시질 않습니다.


우도행 티켓을 구매하고 승선을 했습니다. 제주를 떠나 또 하나의 제주를 만나는 순간은 각 조원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요? 걷기를 통해 과연 ‘자아’를 만날 수 있을까요?

“섬을 넘어 섬을 걷다”


제주라는 섬을 떠나 또 하나의 섬인 우도로 갑니다. 다행히 날이 좋아서 섬을 넘어 새로운 섬을 걷는 과정이 가벼울 것 같았습니다. 제주의 바람을 온 몸 가득 맞으며 제주도 ‘섬 안의 섬’ 우도에 도착했습니다. 날은 맑았고 바다 공기 역시 상쾌했습니다. 자신을 찾아보는 걷기 프로그램의 순조로운 첫 출발이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름다운 섬을 걷기 전에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걷게 될지 모르는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모두들 즐거워 보입니다.


드디어 바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말없이 일렁이는 바다만을 보며 걷습니다. 하나 둘 씩 걸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간혹 같이 걸으며 농담을 섞기도 했지만 점점 혼자만의 길을 걸어가는 조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백사장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산호 해수욕장입니다. 이 아름답고 독특한 모래알들은 홍조 단괴로, 홍조류가 오랜 시간 동안 돌에 달라붙어 덩어리처럼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다들 신기한지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자세히 살펴봅니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이국적인 것을 찾아서,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걸으면서 발견한 작은 돌 하나가 여행자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입니다.


자동차로 지나쳤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름 모를 야생화,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육지와는 다른 집들과 풍경들. 일행들은 이국적인 백사장을 뒤로 하고 이번엔 섬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봅니다.


제주도 특유의 낮은 돌담은 도심에서는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자연의 소리만을 들으며 우도를 걷다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들에 관심이 갑니다. 때때로 멈추고 무언가를 자세히 봅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하게 넘길 것들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나 봅니다. 일행들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걷기의 모습입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가에 있던 소가 일행들을 반겨줍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주인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소는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걷기에서 만난 친구였습니다.


함께 걷기 시작했던 조원들이 이제는 오롯이 각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2002)>에서 “걷기는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난 길을 찾아 가게 한다. 그래서 헐벗음의 훈련이다. 자신과 세계를 가장 본질적으로 대면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걷다보니 일행중 한분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전공이 건축인 이분은 연극이 좋았지만 생활을 위해 건축 관련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번에 지역문화인력이 되면서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꿈을 찾아 가는 과정에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역의 생활문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자신에게 약속했다고 하네요. 얼마 전 지역의 생활문화축제 후 동네 할머님의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에 세상 모두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어느새 걷다 보니 벌써 항구가 보입니다. 우도의 땅콩을 더욱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도의 길에서 만난 자신의 생각들을 갈무리 합니다. 카페의 창가에서 지친 다리를 쉬며 우도의 햇볕을 쬐는 모습도 보이네요.


성산항에 도착하고 뭔가 아쉬웠던 이창원 퍼실리테이터가 일출봉으로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조원들 모두 흔쾌히 승낙하며 다함께 언덕을 오릅니다. 해가 지는 제주도는 자신의 마지막 미(美)를 뽐내는 불새마냥 뜨겁게 타오릅니다.

[야외 식장, 단체사진]


오르막길에서 야외 결혼식장으로 쓰이는 예쁜 공간을 만났습니다. ‘동상이몽’. 같은 공간에서 조원들 모두 각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다시 이동합니다. 우도와는 많이 다른 골목. 익숙한 제주의 골목 풍경이 다시 이어집니다.

[일출봉 입구 사진]


유명한 성산일출봉 시작지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곳에서 여정은 막을 내렸습니다.

일행들은 처음 들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았던 ‘쇠이유 운동’이나 ‘걷는 철학’들이 직접 체험해보니 왜 그 사람들이 걸었는지 이해가 됐다고 말합니다. 걷기는 걸음을 통한 A에서 B로의 단순한 이동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을 여는 하나의 준비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익숙함과 반복이 계속되면서 마음과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걷는다’는 이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만의 우물에서 판단하고 선택했던 것을 객관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조원은 최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가수 GOD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줬습니다. 즐겁게 시작한 걷기가 고통이 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하네요. 그는 이어서 “늘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오래 걸어본 일은 많지 않았다”며, “앞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는 많이 걷게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 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



이번 ‘나는 걷는다’ 프로그램이 지역문화인력들에게 멋진 체험과 자신의 길을 확인해 보는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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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