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생활문화센터 리플렛

기타

[기획연재 27] 장소로서의 공간

발행처 관리자
발행일 2019.06


임재춘/생활적정랩빼꼼 대표
 

 

언론 등을 통해 4차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접하지만, 상상을 초월하여 고도화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나는,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라는 것 외에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막연할지도 모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무엇보다 좋은 삶의 기본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의 관계, 이를 맺는 방식이나 양식의 변화는 많은 이들이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결로 사람들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만나는 일,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일의 가치가 더 커졌다는 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나 문화예술의 가치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 방식이나 양식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관계 형성은 다양하게 보여짐(안동 그림애마을 픙경)

사람들이 살면서 생기는 사회적 접촉이 학교나 직장과 같이 안정적인 그룹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연스럽지만, 그 이외의 생활에서는 지속적인 접촉이나 관계 맺기가 쉽지 않다. 학생이나 직장인의 신분이 아닌 탈학교 아이들, 육아와 살림을 하는 성인, 학교와 직장 외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거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증’이 없는 이들은 삶의 소속감을 갖기 어렵다. 웬만한 자존감이 아니고서는 우울감과 패배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서 그곳, 거기에서 살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조건인 동네가 삶을 지탱해주는 근거지로 사유 되고 그런 관계들의 실체가 동네에 존재하는 일은 비약하자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범주에서 동네는 그냥 내가 사는 곳일 뿐이기도 하지만 공간처럼 어떤 동일한 의도들이 모이는 의미의 곳들이 생겨난다면 지리적 좌표로서의 범주를 넘어 삶의 장소로서 동네가 재설정되곤 한다. 공간은 사람들의 만남이 상시로 이뤄지도록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공간이 있어 사람들을 모으거나 이어주는가 하면, 사람들의 관계가 끈끈해지면서 이를 지속하기 위해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탄력이 생기면 이 두 가지의 흐름이 어우러지기 마련인데 만남의 판을 그리는 기획자나 운영자의 존재, 그리고 임대료 등 공간을 물리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재정 마련의 어려움으로 현실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 재정이나 기획자가 안정적으로 있다고 해서 공간이 의미 있게 운영될까? 당연히 아니다. 불안정은 공동체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과 욕구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들은 필요한 과제들을 정의하고 설정하는데 열정을 더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스스로 정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동기를 부여해 준다.



▲ 용인의 인문학 공동체인 문탁네트워크

용인의 인문학 공동체인 문탁네트워크는 그런 면에서 매우 독보적인 시간들을 쌓아왔다고 볼 수 있다. 지원이나 제도와 거리를 두면서 공부를 통해 사람들의 자발성을 북돋고 시간이 지나면서 튀어나오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공동체 스스로가 껴안음으로써 사람, 재정 등 운영에 대한 부담도 그 안의 과제로 해결해오고 있다. 그게 가능한 바탕은 ‘공부’다. 그러나 모두 문탁네트워크와 같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이게 된, 공간을 만들게 된 저마다의 이유가 중요하다.



동네 초등학교 부모들이 주도하며 마을의 놀이터를 꿈꾸는 안산의 온새미로나 어쩌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많아진 갱년기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놀며 공부하는 수원 광교의 공유 공간 참 좋은 부엌, 자신의 작업실을 만들며 오지랖 넓은 성품에, 겸사 동네 사람들이 들락날락 해도 괜찮겠다 생각하며 만든 성남의 그림책방 노리와 같은 곳들은 부지런히 이런저런 공모 지원 사업에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어디에서 만나든 그들이 빛나는 것은 그들의 활동이 그들이 살고 싶은 삶을 닮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뭔가를 만들고 체험하거나 악기를 배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사람들의 삶이 배어나오는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공동체 활동을 위해 필요한 물리적인 시설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도시화의 흐름에서 벌어지는 새로움에의 추구가 그 도시의 역사나 문화, 기억을 헐어 없애는 장소성의 상실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주민중심의 다양한 공동체공간
① 송내동마을사랑방 ‘소란 마을카페’ ② 안산 감골주민회 ‘청소년 열정 공간 99°C
③ 안산 온새미로의 마을 커뮤니티 공간인 ‘들락날락 ④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청소년 영화방’

영국의 사회지리학자인 앨러스테어 보네트는 공간의 개념이 지리학에서 말하는 장소에 경쟁적 개념으로 등장하여 장소가 지닌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가치들을 합리성을 앞세워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데 동원된 그럴듯해 보이는 개념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장소는 엄연한 실존의 조건이요, 토대다. 장소는 삶의 기반이자 사람의 현전 그 자체다. 사람은 장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사람이다.(경기도의 문학지리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 장석주 지음, 사회평론) 때문에 공간을 매개로 벌어지는 일들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이거나 이를 닮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게 무엇이 되었든 삶의 사건으로 기억하며 스스로 이어갈 타당함이 생기지 않을까. 상상해 보건데 그래야 어느 날 공간이 쓸모를 다해 모아지는 사람들이 마음이 없을 때 그 때를 스스로 정하여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례를 통해 문을 닫을 수 있다면 이것조차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필자소개

임재춘은 경기상상캠퍼스 다사리 문화기획학교 담임멘토를 거쳐 경기창생공간 “생활적정랩 빼꼼” 공동운영자외 커뮤니티 스튜디오104를 운영하는 문화기획자다.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 시 정보 통신망 법에 의해 형사 처벌 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일 : 201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