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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22] 생활문화공동체 10년, 마을을 거닐다

발행처 관리자
발행일 2018.12


안태호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사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이하 생문공)이 올해로 10년을 맞아 여행작가들이 해당 지역에 며칠씩 거주하면서 지역의 결을 담아내는 방식의 사례집을 제작했다. 생활문화 여행을 테마로 작가들이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의 활동과 공간, 동네의 낮과 밤을 탐색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 사례집 제작에 참여하며 3박4일 안팎의 전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취재를 진행한 모든 지역에 동행하는 기회가 생겼다. 마을을 걷는 것은 언제나 유쾌한 경험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더군다나 감사한 일이다. 마을을 함께 거닐며 보고 들은 내용,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를 나눠본다. 사례지로 삼은 지역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류해 봤다. 자의적인 구분일 뿐이지만, 어느 정도는 공동체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로부터


첫 번째는 예술가(단체)가 지역에 들어가 활동한 유형이다. 대전의 극단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진행해 온 공동체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생문공 사업으로는 예술가 단체가 주도한 1기에 해당되는 사업이다.1) 극단은 2009년 생문공 사업에 참여해 중촌동이라는 대전의 임대아파트 밀집지역에서 연극을 베이스로 활동을 진행했다. ‘대살미’(대대로 살아가는 아름다운(美) 마을)라는 이름을 내걸고 거주자들의 사연을 모으고 주민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해 공연을 만들었다. 지금은 중촌동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중촌동에서 인연을 맺은 주민들은 여전히 극단의 단원으로, 주민배우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역시 2009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극단 활동 초기에 경험한 생문공 사업은 단체의 활동에 많은 영감을 주는 동시에 활동 방향의 나침반이 됐다. 현재는 연극을 매개로 한 지역의 문화복지 사업을 폭넓게 수행하고 있다. 11월 말 극단을 방문한 날은 마침 극단의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무대 뒤편에 걸린 대형현수막에 걸린 얼굴을 두고 오홍록 대표가 ‘어디서 본듯하지 않냐’며 말을 건넨다. 아, 그러고 보니 방금 전 극단에서 부침개를 나누시던 분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다. 중촌동에서 연극을 만들 때 찍어둔 사진이 너무 좋아 걸개그림으로 만들어 공연 때마다 걸어둔다고. 극단 단원들이 끼니를 함께 챙기며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공동체를 만나는 경험이었다.


(C)Travie


아이를 기르는 마을을 기르는 아이


두 번째는 육아공동체를 기반으로 성장한 마을 유형이다. 부천의 송내동 마을사랑방, 안산의 감골주민회가 여기에 속한다. 두 단체 모두 주민들이 모여 만들고 운영하는 곳으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생문공 사업에 참여했다. 부천과 안산 모두 아이들을 기르는 문제로 부모들이 함께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활동의 범위를 넓혀와 오늘에 이른 사례다. 아이를 기르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이 공동체들을 보면 오히려 마을이 성장하는 데 아이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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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내동 마을사랑방의 경로는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유명한 성미산과 꼭 닮았다. 산어린이집, 산 방과후, 산 대안학교까지 아이들을 중심으로 뭉친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 변화를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을 위한 활동도 싹이 텄다. 마을주민들은 주민강사로, 마을 목공방의 목수로, 마을활동가로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아이들은 자랐고, 마을도 그만큼 키가 컸다. 이 체력을 바탕으로 사랑방은 눈에 띄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하는 동축제의 이름을 송학골 소리축제에서 송학골 도롱뇽축제로 바꾸낸 것이다.부천에서 유일하게 도롱뇽 서식지가 확인되는 거마산을 외면한 채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름으로 축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사랑방의 주장이었고, 이는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사실, 마을협동조합 소란을 구성하고 카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공동체의 현재모습은 생문공 사업이 진행되던 시간들에 비해 조금 활력이 잦아든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걸음마에 가까운 공동체의 행보라 해도, 그 동안 함께 길러낸 활동력과 관계의 근육을 바탕으로 이들의 일상은 그 전보다 한결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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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골주민회의 시작도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는 샘골사랑학부모회에서 시작한 활동은 아이들이 성장하며 지역사회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감골주민회는 마을숲카페, 청소년 열정공간 99℃, 통나무 공방 등 여러 공간을 운영한다. 당연히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아웅다웅 지지고볶는 마을살이의 모습이 날마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감골주민회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활동중 하나가 마을숲카페에서 열리는 ‘나빠스터디’다. ‘나빠 스터디’는 인근 고등학생들이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누나 오빠 스터디’의 줄임말이다.


장래희망이 교사인 아이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험을 하며 학습성취율이 높아지고, 배우는 아이들은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이다. 학습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동네 누나 오빠들과의 관계도 만들어지니 일석삼조라 부르는 게 적절하겠다. 처음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안했지만, 관계의 확장과 지역 활동으로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것. 감골주민회의 활동이 그런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아이의 행방을 주민들이 SNS로 확인해주는 경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2) 감골주민회는 생문공 네트워크 사업에도 참여하며 안산에 있는 인근 지역 마을공동체를 만나고 새롭게 조직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사업에 지칠 법도 한데, 감골주민회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일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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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찾는 마을


세 번째는 지역의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공동체 활성화를 일구어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 그림애문화마을, 부산 영도의 흰여울문화마을이 그렇다. 마을 자체가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흰여울 문화마을)이거나 인근의 관광지를 활용하여 장터를 열고 마을사업을 확장(그림애문화마을)한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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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애문화마을의 행정명칭은 신세동이다. 피란민들과 어려운 이웃들이 신세를 지고 간다고 해서 신세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는 새 절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지만,3) 주민들의 입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진실이 있는 법. 안동역 인근의 제법 가파른 경사를 타고 오르는 마을은 이름처럼 고단한 삶의 자리가 되어 있었다. 2009년에는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유명세를 타 한 동안 관광객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이전까지 택시조차 가기를 꺼리던 달동네 마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 주민들의 초상이 새겨지고 다양한 벽화가 마을 곳곳을 장식하며 이전까지 어둡던 마을분위기가 확 밝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벽화만으로 실제 주민들의 삶을 바꿔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주민들의 평균나이 70대 중반을 헤아리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2016년부터 참여한 생문공 사업을 통해 시도한 장터였다. 이제 그림애 월영장터는 마을의 핵심 사업이다. 장터는 짧은 시간에 안동에서 가장 큰 장터 중 하나로 성장했다. 거쳐 간 작가만 150명이 넘고, 안동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 월영교에 자리 잡은 덕분에 매출액도 상당하다. 주민들의 공예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손님들을 맞고, 할매들의 인심이 푸근한 마을 점빵으로 주민들이 스스로의 활동을 확장해내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어려운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마을의 풍경은 포근하기만 하다. 마을의 정상, 한밤의 전망대에서 달빛을 받으며 마을을 내려다보면 어느 새 달과 별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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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문화마을 역시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힌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촌으로 형성되어 벼랑 끝에 좁은 집들이 몰려있는 탓에 마을 골목에 서 있노라면 눈 속으로 바다풍경이 시원하게 담긴다. 마을이 각종 영화와 매체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다 보니 이런 저런 문제들이 빈발했다. 흰여울문화마을이 생문공 사업에 참여한 2014년은 지자체의 여러 사업이 한꺼번에 마을로 몰려들던 시점이었다. 무언가 마을단위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에 영도문화원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생문공 사업을 신청하고 공동체를 꾸려 논의과정을 이끌어 왔다. 생문공 사업을 통해 다양한 일들이 펼쳐졌다. 마을 중간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점빵이 들어섰고,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외부 손님을 맞기도 한다.


흰여울 점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맛은 이 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놓쳐선 안 되는 경험이다. 마을해설사와 함께 골목골목을 투어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 ‘꼬막계단길’이 사실은 작은 집을 뜻하는 ‘꼬마집’의 와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새삼 골목길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주민들은 생문공 사업의 성과 중에서도 ‘국밥데이’를 손에 꼽는다.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 시래기국밥을 나눠먹으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손도손한 공동체의 힘이 부쩍 길러지는 기분이었다. 국밥데이의 성공에 힘입어 공동체는 자신감을 얻고 마을 일을 더 기운차게 벌일 수 있었다. 흰여울문화마을 곳곳에는 마을 중간에 세워지는 7층짜리 교회 신축에 대해 반대하는 전단이 붙어있다. 마을공동체가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고 마을의 일에 팔을 걷어부친다는 것은 그만큼 기운이 축적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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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마을


오늘 소개한 공동체들의 특징이 있다면, 모두 생문공 사업이 마중물이 되어 공동체 활성화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활동 초기 사업에 참여하며 통과한 다양한 경험들은 공동체가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공동체들이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행정과 의사소통을 하며 다른 단위와 교류하교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싶다. 키워드는 하나로 수렴된다. 자신감.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머쓱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해법을 찾으니 어떻게든 어려운 일도 해결할 길이 나오더라는 것. 생문공 사업의 3년은 공동체가 무르익는 데 충분하지는 않아도 공동체에 말을 건네고 시동을 거는 데는 유용했다. 공동체와 마을의 동행을 새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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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2009년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이 시작됐을 때는 사업참여 대상이 문화예술단체로 한정되어 있었다. 2011년 이후 기획자나 주민들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자 점차 예술가 단체의 비중이 낮아지고 기획자와 주민단체의 비중이 높아졌다.
2) “우리동네 구석구석” 우리마을 생활문화 공간 - 안산 감골마을 탐방기
3) 두산백과 ‘신세동’ 항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15623&cid=40942&categoryId=33922


필자소개

안태호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활동가를 시작으로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나보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깨닫고 창작자가 되는 걸 단념했다. 예술가의 길은 포기했지만 친구는 되어야겠단 생각으로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주로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되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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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