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 vol.04

  • 2020-06-24 ~ 2020-11-25
  • 지역전체
  • 풀무질
  • 152
변화와 연속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것이 변화와 연속이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안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사실 안 바뀌는 것은 없다. 다들 조금씩은 바뀐다. 그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을 쓰고 있으면 ‘계속된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어떤 것은 제발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또 어떤 것은 그대로 있었으면 한다. 그 기준은 주관적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나의 부모 세대, 그러니까 산업화 시대에는 옛것을 부수고 새것을 짓는 것이 유행했다. 그러나 나 같은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강남보다 강북의 골목길을 선호한다. 이러한 세대적 문화 차이 역시 변화와 연속으로 분석할 수 있다.

책방 ‘풀무질’은 특수한 지점에 있다. 그렇게 재개발을 좋아하는 윗 세대지만 풀무질 만큼은 이어졌으면 했다. 이곳을 만들고, 지키고, 아끼던 분들이 자본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풀무질은 진작 망한 사업이다. 작년에 내가 인수했을 때 빚이 1억 5천만 원이었다.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에서 도태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지키고자 했다. 언론에서 보도했고, 거래처는 빚을 탕감해 줬으며, 단골들은 모금했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올해로 34년째다.

물론 바뀐 것도 많다. 책방을 살리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했다. 기존의 노동, 어린이, 인권 중심의 서가에 여성인권, 동물권, 기후위기 등을 더했다. 내부 공사도 했다. 곰팡이가 생긴 책장을 덜어내고, 천장과 벽을 색칠했으며, 계단에는 벽화도 그렸다. 새로운 상표를 만들어서 간판으로 내걸고 조명도 교체했다. 그리고 색다른 행사들을 여럿 기획했다. 책 모임뿐만 아니라 전문 강좌, 영화 상영회, 워크숍 등등. 일 년 정도 세심하게 가꾸니 전국에서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천에서도 오고, 광주, 부산에서도 온다. 풀무질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오시던 손님들 중에는 새로운 풀무질이 낯설다고 속상해하는 분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대뜸 찾아와서 “너네 제대로 안 하면 책방에 불 질러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농담 같지 않아서 화재보험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했다. 더 많은 분들이 “책방이 예뻐져서 좋다”,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해줘서 힘을 냈다.

오늘 아침에 방문한 손님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아직도 있어 놀랐고,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운 풀무질. 계속해서 있어야 할 공간입니다. 타는 목마름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에 깨어있기를. 지성인의 의무를 조금이라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간에 아직도 애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책 읽던 곳, 풀무질. 사라지지 않길.” 어쨌든 풀무질은 계속되고 있다. 변화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얻고 있다.

주변을 보면 그렇지 못한 곳들이 많다. 책방 ‘이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전장에서 전우를 잃은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혜화의 많은 명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재영 님이 그리워하는 명륜동 밥집 ‘맛자랑’도 없어졌고, 허지원 님이 즐겨 찾던 예술극장 ‘나무와 물’도 문을 닫았다. 혜화역의 랜드마크 샘터 출판사가 빠진 자리에는 공공그라운드가 들어왔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건물에 상업 자본이 들어오지 않고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주체가 들어와서 다행이다. 변화를 통한 계승이라고 생각한다. 배수현 대표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예상치 못한 동지를 얻은 감동이 있었다. 책방하는 것이 전쟁도 아닌데, 왜 자꾸 이런 비유가 떠오르는 걸까.

그만큼 걱정되기 때문이다. 혜화라는 동네가 각광받아야 동네책방 풀무질도 살아날 텐데. 혹시나 혜화 상권이 죽으면 어쩌지? 아니면 반대로, 혜화도 강남이나 홍대처럼 철저히 상업화되면 어떡하지? 젠트리피케이션이 좀 일어나야 ‘힙’해질 것 같은데, 너무 일어나면 또 안될 것 같다. 분명 혜화에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 책은 흔들리는 혜화의 골목길에 대한 여러 감상을 엮었다.

역사가의 질문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왜” 무엇은 변하고 무엇은 안 변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종교나 철학의 영역이다. 역사가는 그저 “어떻게” 변화와 연속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그러한 설명이 하나의 재미난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역사적”이라고 감탄한다.

‘혜화’라는 역사적인 동네에 ‘풀무질’이라는 역사적인 책방이 있다. 나는 미약하게나마 변화는 당장 만들 수 있어도 전통은 못 만든다. 연속성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깨닫는다. 그래서 사라지는 명소들이 슬프다. 그 이름과 공간과 함께 소멸될 이야기가 아쉽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못할 이야기들. 그리고 그곳에서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들. 역사가 곳곳에서 단절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뿐이다. 어떤 변화는 슬퍼하고 어떤 변화는 기뻐하며, 어떤 연속은 예찬하고 어떤 연속은 개탄하면 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단절된 만큼 탄생할 것이다. <혜화>가 그러한 이야기 모음으로 자리 잡길 기원한다.

2020년 10월 13일
풀무질에서 전범선


첨부파일 혜화 4호.pdf